[사설]‘실거주 의무’ 경직된 적용, 전세대란 더 부추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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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택시장의 전세 매물 부족으로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 아파트 공급이 줄고, 기존 세입자는 4년을 보장받아 눌러앉은 데다 그나마 임대시장에 나온 집들은 집주인들이 반전세, 월세로 돌려 전세 매물이 품귀다. 게다가 정부가 ‘실(實)거주’ 요건을 대폭 강화하면서 온갖 경직된 규제 조항들을 도입하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작년 말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최대한 받으려면 10년 이상 거주하도록 법을 고쳤다. 올해 6월에는 2년간 실거주 사실을 입증해야 재건축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게 했고, 내년 2월부터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당첨자는 5년간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한다. 직접 살고 있는 한 채 외의 주택 보유는 ‘투기’로 보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상이다.

단기간에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당황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자기 집을 빌려주고 다른 집에 살던 사람이 급하게 집을 처분하느라 거주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많게는 수억 원의 손해를 봐야 한다. 학군이나 직장 근접성이 좋은 선호 지역의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자녀교육을 마치거나 직장에서 은퇴한 집주인이 학령기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부에게 전세를 주고 본인들은 다른 지역에 세를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집주인들이 이제 의무 거주기간을 채우겠다며 세입자를 내보내고 있다.

교육 문제 등의 이유로 선호되는 일부 지역에선 전세를 살다가 밀려난 젊은 세입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세대, 원룸의 전셋값과 집값까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주택 실수요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도입한 실거주 요건 강화가 현실에서는 집주인의 재산권 행사와 세입자의 거주이전의 자유 모두를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교육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실수요자가 선호하는 지역은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이미 심각한데 내년엔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이 더 줄어든다. 실거주 규제 때문에 집주인들이 선호지역 내 자기 집을 차고앉으면 세입자들이 임대매물을 찾기는 더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커진다. ‘실거주 의무 강화’라는 큰 방향이 옳다 해도 1주택자 보유 주택의 경우엔 실거주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실거주 의무#경직#전세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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