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요즘 깨닫는 공동체와 배려의 가치[광화문에서/유재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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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뉴욕 특파원
유재동 뉴욕 특파원
미국에서도 원격 브리핑, 화상 포럼이 대세다. 공간의 제약이 없다 보니 비록 노트북 화면을 통해서이지만 거물급 인사를 의외로 자주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의 온라인 강연을 들었다. 빌 클린턴 정부 차관·장관을 거쳐 하버드대 총장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강연은 사회자가 오프닝 질문을 던지고 서머스 전 장관이 답변하는 형태로 시작됐다. 그는 “팬데믹 이후 경제는 어떻게 될까. L자형, V자형 등 중에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보기에 없는 ‘K자형’을 제시했다. 보유 자산이나 업종에 따라 희비가 갈리면서 사회 구성원 간 빈부격차가 심해진다는 뜻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국가들도 앞으로 K자로 갈리지 않을까. 어떤 나라가 위기를 잘 극복하고, 어떤 나라가 더 힘들어질 것 같은가?”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위계질서가 잡힌 사회는 성공할 수 있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공동체 의식이 옅은 곳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답변의 논지는 다음 문장에서 더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전에도 세계 경제의 중심이 점점 동쪽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사태는 이를 더 가속화하는 것 같다.”

서머스 전 장관뿐이 아니다. 요즘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 중에는 ‘아시아적 가치’를 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근 대만을 방문한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원격으로 진행된 브리핑에서 “대만의 방역 성공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사회 문화 규범이 미국과 다른 점이 있고 이 가운데 우리가 배울 것도 많다고 본다”고 답했다. 조금 불편해도 마스크를 쓰는 데 동참하고, 정부의 방역 지침을 잘 따르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동체 의식을 미국도 본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많은 미국인들은 코로나 사태 초기만 해도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동양인을 기피하거나 심지어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중시하는 이들 눈에는 당국의 철저한 추적 감시와 통제에 순응하는 아시아인들이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개인주의가 평상시에는 창의와 혁신의 원천이 될 순 있어도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미국인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를 보면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이제 70%에 이르고, 손님 감소를 각오하고 ‘No mask, No entry(마스크 안 쓰면 입장 불가)’ 같은 안내문을 붙인 가게도 적지 않다.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작은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는 의식 변화의 흐름이 읽힌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엘리자베스 브래들리 뉴욕주 바사대 총장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그는 이번에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게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배려하고 의지하며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법,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는 법을 익힐 겁니다. 물론 이건 미국의 개인주의와는 상당히 다르죠. 하지만 훨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대학은 학생들에게 ‘공동체 배려 서약’을 받고 엄격한 방역 규정을 마련해 올가을 대면 수업을 재개할 계획이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국#공동체#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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