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시카고 ‘매그니피선트 마일’(매그마일)이 폭동과 약탈 문제로 뉴스를 달궜다. 매그마일은 시카고 최고 번화가다. ‘매그마일’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던지는 건축적 메시지는 무엇일까?
시카고에서 시카고강과 미시간 애비뉴가 건축적으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크다. 사람들이 북적일 뿐만 아니라 강과 거리가 건축으로 살아 있다. 강은 시카고의 동서축을 형성하고, 애비뉴는 남북축을 형성한다. 둘은 ‘십(十)’자로 교차한다.
이 교차로 코너에 들어선 1920년대 마천루 4개를 시카고 사람들은 ‘포 코너스(Four Corners)’라 부르며 각별히 사랑한다. 이 중 북쪽 코너에 있는 두 마천루가 1924년 준공된 리글리 빌딩과 그 이듬해 준공된 트리뷴 타워다. 여기서부터 시카고 명품 마천루들이 두루마리 영상 필름처럼 하나하나 펼쳐진다.
시카고강 북쪽 미시간 애비뉴의 1마일 길이의 길인 ‘매그마일’은 1920년 미시간 애비뉴 다리(DuSable Bridge) 건립으로 태어났다. 강이 도시의 팽창을 막고 있다가 다리가 연결되면서 도시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매그마일은 리글리 빌딩과 트리뷴 타워에서 시작해 1867년 준공된 워터타워와 1969년 준공된 존 행콕 타워에서 끝난다. 매그마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워터타워이고, 제일 높은 건물은 존 행콕 타워(100층·344m)다. 거리에서 나이와 높이도 중요하지만, 이 거리의 진짜 주인공은 리글리 빌딩와 트리뷴 타워다.
워터타워는 오스카 와일드가 ‘과다한 후추통’ 외관이라고 혹평할 만큼 별 볼일 없다. 다만 1871년 시카고 대화재에서 혼자 살아남아 ‘불사조’라는 애칭을 얻었고, 현재는 시카고의 중요 문화재다. 존 행콕 타워는 모더니즘 유리박스 타워로 준공 당시 94층 전망대에서 바다만 한 미시간 호수의 조망과 빼곡한 마천루 풍경을 시민들에게 선사했다. 두 건물은 매그마일의 종착점으로 괜찮은 랜드마크다.
하지만 리글리 빌딩과 트리뷴 타워는 건축적 평범함을 넘어선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하자 시카고는 개선문의 성격으로 리글리 빌딩과 트리뷴 타워를 세웠다. 미국의 껌 회사이자 당시 시카고 컵스의 구단주였던 리글리 가문은 시카고 건축 르네상스에 관심이 많았고, 시카고트리뷴지는 시카고 메이저 언론으로 시카고 발전을 위해 여론을 결집하고 리드했다.
건축 양식적으로 리글리 빌딩은 고전양식 타워고, 트리뷴 타워는 고딕양식 타워다. 양식은 다르지만 시카고강과 매그마일을 향한 목적의식은 같았다. 시카고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리글리 빌딩의 평면이 많은 것을 말한다. 시카고강은 여기서 물 흐름이 꺾인다. 그래서 다리도 비스듬하다. 그 결과 리글리 빌딩의 평면이 사다리꼴이다. 도형 코너에서 예각들이 나오면서 건물 코너가 접힌다. 수직성을 향한 재료와 빛도 남다르다. 건물 외장을 수직적으로 분할해 저층 백색 테라코타는 짙은데 아주 미세하게 위로 갈수록 밝아진다. 그 덕에 마천루가 위로 갈수록 경쾌해지고 상승감이 산다. 리글리 입면 인공 조명장치는 강 속에 두었다. 저녁에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강 수면 물결 문양이 고스란히 건물 입면에서 백색으로 빛난다. 눈이라도 오는 밤이면 그 모습은 한 편의 시(詩)다. 건축은 자연을 지렛대 삼아 일어설 때 가장 높이 선다.
트리뷴 본사 국제 마천루 공모전은 오늘날 뉴욕 그라운드 제로 공모전만큼이나 당시 쟁쟁했다. 트리뷴 타워는 도시 스카이라인의 주체가 중세 교권에서 현대 상권으로 이양되었음을 상징한다. 저녁에 마천루 고딕 왕관은 화로 숯불처럼 붉게 타오른다.
리글리 빌딩과 트리뷴 타워는 서울 한강변에 어떤 마천루를 세워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싸게 빨리 지으면 대부분 쉽게 철거하고 금방 잊힌다. 하지만 시대의 재능을 담은 건물을 돈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지으면 그 가치는 오래가고, 또 아주 가끔은 세상을 흔든다. 그때 길과 수변은 지속적으로 번영한다. 지금의 매그마일과 시카고 강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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