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처벌 남용 우려되는 공정위의 ‘부당 지원 심사지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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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부당한 지원 행위의 심사지침’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부당 지원 행위는 기업이 특정 계열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행위 등을 말한다. 공정위는 부당 지원 행위의 요건 중에서 ‘상당한 규모의 지원 행위’에 대한 정의와, 경쟁제한성 판단에 대한 기준 등을 바꿨다. 산업계에서는 지침의 애매한 표현이 늘어나 ‘걸면 걸리는’ 부작용을 우려하지만 공정위는 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곧바로 시행할 태세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상당한 규모의 지원 행위’에서 ‘상품·용역을 상당한 규모로 제공 또는 거래하는 것은 지원 행위에 해당한다’라고 못 박은 것이다. 기존에 ‘지원받는 기업의 시장 구조와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던 내용은 없앴다. 공정위는 거래량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부당 지원으로 보지 않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방해했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상당한 규모’는 물론이고 다른 부당성 입증 판단도 애매하고 주관적이어서 기업들은 불안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개정안은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체인이 급변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보호무역 추세 속에 기업들은 부품 조달의 안정성을 위해 수직계열화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내부거래 비율이 56.5%이고 삼성전자도 자사 제품의 애프터서비스를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가 100% 담당한다.

게다가 일본의 수출규제로 정부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독려함에 따라 대기업들은 계열사를 통한 소재·부품 투자와 거래를 늘려왔다. SK는 계열사를 통해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런 거래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면 정부의 다른 정책이나 글로벌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기업들의 목소리를 좀 더 수렴해 재검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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