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외눈 역사관, 위선, 정권욕… 집권좌파의 3대 DNA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1일 03시 00분


김원웅이 상기시켜 준 권력좌파의 속성… 편협한 역사관을 정치적 도구로 휘두르고
위선으로 점철된 삶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오로지 재집권을 위해 수단방법 안 가려

이기홍 논설실장
이기홍 논설실장
‘김원웅’이라는 이름을 칼럼에서 언급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논평의 소재를 선택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이념적으로 양극단에 있는 이들의 주장은 논평 대상으로 삼을 가치도 없다고 본다. 피겨스케이팅에서 채점위원들의 점수를 종합할 때 최고점과 최하점은 제외하듯이, 양극단은 가급적 공론의 장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나름의 기준이었다.

게다가 김원웅 광복회장이 최근 쏟아낸 발언의 논리적 깊이도 1980년대 대학 이념동아리에 갓 발을 디뎌 좌파서적 몇 권과 팸플릿 몇 장 읽은 신입생의 3월말 인식 같은 표피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수준의 발언이 여전히 여론의 장에서 횡행할 수 있는 우리사회의 역사·지식 풍토, 그런 인식을 지닌 인사가 광복회장을 차지한 현실이 의미하는 문제점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김원웅 파문은 권력 주변 좌파들의 3대 DNA가 결코 변하지 않는 것임을 상기시켜줬다. 그 DNA는 바로 ①편협한 역사관 ②위선 ③재집권욕이다.

우리 사회에서 역사통합이 어려운 이유는 일제 침략자들이 쫓겨 간 뒤 바로 이념대립과 분단이 이어진 탓이 크다.

반민특위가 사실상 와해돼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못한 결과 반세기도 더 지난 뒤에 특정 이념세력이 자기들 잣대로 단죄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다 보니 일제강점기 당시는 물론 광복 직후에도 동시대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민족지도자들이 정작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않은 후대인들에 의해 친일파로 몰리는 왜곡이 빚어진다.

1948년 출범한 반민특위가 조사대상으로 삼은 친일 혐의자는 682명이었고 그중 221명이 기소됐는데 노덕술처럼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는 물론 최남선 이광수 등도 다 포함됐다. 하지만 그 후 방해공작으로 처벌이 흐지부지됐는데 만약 방해공작 없이 682건이 모두 엄중히 처리됐다면 수십 년 후 좌파가 ‘친일파 프레임’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좌파 연구자들은 수십년이 지난 뒤 우파 진영 민족지도자들을 친일파로 몰아 부관참시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정작 반민특위에선 조사대상으로 오르지도 않았던 인물들이다.

좌파사학자들은 프랑스 드골이 나치 부역자들을 처단한 것을 교본으로 비교한다. 하지만 나치의 프랑스 점령은 2~4년이었다. 35년의 일제강점기와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분단과 6·25전쟁이 없었다면 우리도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가 했듯 진실을 밝히고 국민통합이라는 큰 가치 안에서 화해하고 용서하는 그런 청산과정을 밟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이 없다보니 편향된 몇몇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색깔로 역사를 재단하고, 독립운동가를 대표하는 단체의 수장이 이념단체 팸플릿 수준의 주장을 광복75주년 기념사로 내놓아도 여당 고위급 인사들이 한마디도 문제제기를 못하는, ‘억지와 무식이 성역화된 진실’처럼 군림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물론 김원웅류의 역사관은 낯설지 않다. 조국을 비롯해 친문들이 수없이 주창해온 바다. 우리 현대사가 친일파와 독립투사로 양분되며, 대한민국은 미제의 사주를 받은 친일 분단세력이 주축이고 북한은 민족해방투쟁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그런 단선적이고 선명한 세계관은 오랫동안 집권세력 저변에 흐른 DNA다.

그런 외눈박이 사고(思考)는 특히 리영희의 사상 세례를 받은 세대에서 두드러지는데, 문제는 통일장관 국회외통위원장 등 외교안보를 다루는 인사들의 발언 속에도 그런 세계관이 묻어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김원웅이나 조국은 냉전시대가 빚은 정신세계의 화석(化石)이며, 여전히 머릿속이 그 시절로 유예돼 있는 ‘이념의 갈라파고스’가 지금 이 나라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좋은 사례다.

김원웅이 확인시켜 준 또하나의 DNA는 위선과 뻔뻔함이다. 1944년생인 김원웅은 1972년 공화당 당료가 됐고 1980년 민정당 창당부터 1990년 3당 합당 때까지 민정당 간부를 지냈다.

5공 참여 등이 생계형이었다는 그의 주장은 조국 일가의 입시 부정 의혹이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최근 ‘조국백서’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그런 주장을 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후안무치는 그들의 고질적 특질이다.

또 하나 여실히 확인되는 DNA는 편집증 수준의 재집권 욕구다. 집권세력이 재집권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언제든 권력을 내놓을 수 있다는, 언제든 야당을 해도 된다는, 상대 당이 집권해도 민주주의는 정상 작동된다는 생각을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집권 초 꺼냈던 20년 집권론, 영구집권론이 어느새 재정 조세 복지 등 모든 정책분야에서 유일무이의 정책목표가 되어버린 듯하다.

국부(國富)를 늘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안보를 튼튼히 하고 그렇게 잘한 결과물로 재집권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나라 곳간을 거덜 내고,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로 편 가르기 하고 그 갈등에서 나오는 이익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정치 행태가 노골화된다. 검찰의 독립성을 서슴없이 무너뜨리는 것도 권력을 잃으면 끝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재집권에 매달리는 것은 공화제와 민주주의 참여 세력으로서의 자격상실이다.

자신의 것만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뒤집어버리는, 역사를 편의적 정치도구로 동원하고, 자신들의 위선에는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런 DNA가 친문세력에게서 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난망인 것 같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김원웅#광복회장#일제강점기#조국#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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