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이승재의 무비홀릭]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1일 03시 00분


영화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스스로 만든 지옥에 빠지는 우 선생. 진정한 사랑은 누가 규정할까? 스마트시네마 코리아 제공
영화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스스로 만든 지옥에 빠지는 우 선생. 진정한 사랑은 누가 규정할까? 스마트시네마 코리아 제공
※이 글에는 중국영화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근면성실한 중학교 국어교사 ‘우 선생’은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잠자는 아내를 보채어 섹스를 해요. “교장 선생님이 보자고 안 해?”(아내) “승진시켜 준다는 확답을 듣긴 했으니 접대하진 않아도 될 것 같은데.”(남편) 성관계 도중 승진을 둘러싼 대화를 나눌 만큼 결혼 18년째인 우 선생 부부의 섹스는 무덤덤하고 예사스러워요(배가 불러 터진 게 아닐까요). 그날 오후, 해괴망측한 일이 일어나요.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 빛이 내리면서 학생 몇몇이 그 자리에서 증발해 버린 것이지요. 곧이어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만 사라졌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돌아요. 실제로 우 선생 학교에서 사라진 학생들도 하나같이 교내 커플들이었어요. 우 선생은 혼란에 빠져요. 왜 난 사라지지 않았을까? 아내를 분명 사랑하는데. 그럼 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 그때부터 우 선생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지요….

흥미롭지요? ‘출발! 비디오 여행’ 스타일로 친절하게 읊어드린 이 내용은 중국영화를 스마트폰 앱으로 개봉하는 플랫폼 ‘스마트시네마’를 통해 제가 관람한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란 영화의 도입부예요. 자, 우 선생은 승진했을까요? 실력도 없는 동료 교사 ‘주 선생’이 대신 승진했어요. 주 선생의 아내가 빛과 함께 사라졌는데 정작 주 선생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그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게 확실하다는 것이지요. 순결한 영혼을 지닌 사랑의 피해자 주 선생이 승진 대상자로 적합하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에요.

와우! 들을수록 윤희숙의 국회 5분 연설처럼 희한하게 빨려들지요? 이 영화엔 ‘자이’라는 여성을 둘러싼 또 다른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이건 가일층 재미나요.

부잣집 딸인 자이는 순진하고 가난한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부모가 반대하자 옥상 난간에서 자살하겠다며 시위해요. 딸의 옷자락을 단단히 붙잡은 부모는 “남자친구는 우리 재산을 노릴 뿐 너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고 외치지요. 매일 다투기만 하는 자이의 부모님은 마음으론 갈라선 지 오래. 아버지는 내연녀가 많고 어머니는 도박에 빠졌지요. 바로 이때, 하늘에서 의문이 빛이 내리쬐어요. 자, 자이와 남자친구는 사라졌을까요? 정작 사라진 건 어머니와 아버지였어요. 이게 무슨 뜻? 원수지간인 부모님이 오히려 진정한 사랑? 머리가 복잡해진 자이는 이때부터 남자친구의 진심을 의심하고, 남자친구는 “사랑을 증명하겠다”며 투신자살을 시도해요.

와우! 영화엔 더 기가 막힌 사연을 가진 세 번째 인물이 등장해요. 남편의 외도로 이혼 절차를 밟는 커리어우먼 ‘리난’이지요. 이혼 도장을 찍으려 남편과 관공서에서 만나기로 한 그녀. 갑자기 웬 빛줄기가 내리쬔 뒤 남편은 감감무소식. 사랑에 빠진 커플만 사라진다는 속설대로라면 남편은 섹시한 내연녀와 더불어 사라졌을 터. 그런데 놀랍게도 내연녀가 자신을 찾아와 “사라진 네 남편을 찾아내라”고 따져 물어요. 혹시 남편에겐 진짜 사랑하는 또 다른 여자가 있는 걸까? 결국 리난과 내연녀는 피해연대를 이뤄 또 있을지 모를 ‘내연녀2’를 함께 찾아 나서지요.

결론이 궁금하지요? 우 선생의 아내는 불륜과 전혀 관계가 없었어요. 남편의 또 다른 내연녀를 찾아 나선 리난과 원조(?) 내연녀도 결국 제3의 여인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남편은 교통사고로 죽었음이 뒤늦게 밝혀지니까요.

이 영화는 ‘부당전제(不當前提)의 오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케 해줘요. 부당전제의 오류란 잘못된 전제를 참으로 여기고 추론한 결론 역시 오류란 거죠. 이 영화에서 ‘빛의 부름을 받아 사라진 자들은 진정한 사랑꾼’이라는 세간의 믿음은 전제부터 오류예요. 그 빛이 ‘선함’ 혹은 ‘절대기준’이라는 전제 자체부터 불완전한 인간들의 위험한 믿음이었으니까요.

그놈의 빛이 뭐 그리 대단하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자’와 ‘사랑하지 않는 자’로 나뉘어야 한단 말이에요? 왜 우린 증명되지 않은 빛줄기를 절대선으로 받아들였을까요? 맞아요. 인간은 때론 손쉽게 선동되고 서로 편을 갈라 반목하며 돌을 던지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에요. 영화 속 우 선생은 결국 깨달아요. 그 빛은 ‘기준’이 아니라 인간의 미혹한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는 ‘시험’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지금 이 땅에도 여러 얼굴을 한 ‘빛’이 내리쬐고 있어요. ‘바로 세움’의 빛, ‘개혁’의 빛, ‘타파’의 빛, ‘청산’의 빛,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빛이 그것이지요. 바로잡고 개혁하고 청산하자는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매혹적이고 아름다워 보여요. 하지만 그 개혁과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된 상대를 ‘악(惡)’으로 당연시하는 전제의 오류를 우린 범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말이지요. 집 가진 자와 없는 자, 강남과 강북, 수도권과 지방, 여자와 남자, 자가와 임대, 전세와 월세, 전월세전환율 2.5% 이상과 이하, 광화문에 뛰쳐나오는 사람과 안 나오는 사람, 남자 동료의 엉덩이를 손으로 딱 칠 수 있는 남자와 칠 수 없는 남자. 이렇게 딱 둘로 세상을 나누는 빛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말이에요.

‘아내는 나를 진짜로 사랑할까’라는 한심한 의심을 품기 전에 ‘내가 아내를 의심하도록 만든 불온한 빛의 정체는 뭘까’를 먼저 의심하는 것이 개돼지와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권, 바로 합리적 이성이 아닐까요? 빛이 사방팔방으로 내리쬔들 우린 그저 계속 살아갈 뿐이랍니다.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무비홀릭#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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