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에서 많은 일을 하는 가운데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강의도 하고 방송활동도 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다문화 관련 연구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에서도 ‘다문화인식 개선교육’ ‘세계 시민교육’ ‘문화다양성 교육’ 등 다양한 명칭의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명칭만 다를 뿐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구성원에게 여러 방면으로 다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 주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 속의 핵심 키워드는 언제나 ‘차별 없는 사회’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등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다문화가족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국에 와서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는 선입견에 머물러 있다. 다문화가족의 남성 역시 학벌과 학력,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국인 여성을 만나지 못해 결국 외국인 여성을 만나 혼인했다는 인식이 크다. 이러한 사례들을 많이 봐 왔지만 최근에 내 인생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문제는 남편 상사가 한 말에서 시작됐다. 회식 자리에서 남편에 대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해 잘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 말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다른 상사로부터 무례한 질문이 돌아왔다. “중산층 이상의 연봉에, 나이도 많지 않은데 왜 굳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나?” 남편은 당시 대답하지 않고 상황을 넘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소문이 커졌다. 급기야 ‘외국인 아내를 사들이는 데 300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 소문은 부서를 옮긴 남편 귀에도 들어갔다.
다문화가정을 위해 지금까지 여러 활동을 해 온 나의 경험에 비춰 보면 이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차별의 과정에서 흔히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짚고 넘어갈 것은 우리가 바쁜 사회에서 사는 만큼 때로는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산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배웠다. 언제나 타인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령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인의 삶을 무시하거나 단정 짓는 행동은 분명 잘못이다.
얼마 전 이주여성과 상담을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이주여성이었다. 남편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외국인 여성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국가 지원금을 받는 경우였다. 남편이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부인에게 숨기는 바람에 이 가정에서는 부인이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를 담당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이 차이가 많았던 다문화가정 부부의 경우 나이가 많은 남편의 경제활동이 여의치 않으면 결국 더 젊은 아내가 경제활동을 책임지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돈만 보고 시집온 이주여성이나 능력이 부족해 국제결혼을 한 남자나 똑같다’고 말한다. 현실은 저마다 다 다른데도 말이다.
변화는 지금부터 이뤄낼 수 있다. 수십 년 전 단편적인 다문화가정의 모습만 보고 이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으로 다문화가정을 상상하고 정의 내리는 경우가 없었는지 생각해보자. 사실 다문화가정뿐 아니라 사회 어느 구성원이든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사실처럼 생각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다문화 인구는 340만 명에 이른다. 지방 학교나 서울의 일부 구에서는 학교의 30% 이상이 다문화가정 자녀들로 이뤄져 있다. 하루빨리 다문화가정에 대한 선입견과 인식이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바뀌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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