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에게 국정 전반의 권한을 이양하는 등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김여정이 사실상 권력 2인자로서 특별히 대남·대미전략을 총괄하고 있으며, 군사와 경제 분야에서도 각각 두 사람이 부분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은 여전히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고 했다.
권력자 1인이 지배하는 북한 체제에서 김정은이 위임통치를 한다는 국정원 보고는 온갖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사안이다. 위임통치는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국제연맹 권위를 빌려 약소국을 지배한 변형된 식민통치 방식이다. 북한 내부 권력에 그런 용어를 끌어다 쓴 것은 무리한 이름 붙이기가 아닐 수 없고, 실제 북한에서 위임통치가 이뤄진다면 실질적 권력은 김정은이 아닌, 김여정에게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당장 김정은의 건강 이상, 김여정의 후계통치 같은 구구한 추측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과거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아 권한을 위임하면서 ‘공동통치’라 불린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김정은의 건강엔 이상이 없고 ‘통치 스트레스’ 경감 차원에서 권한을 이양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김정은이 통치에 자신감을 갖고 여유를 부리는 것이자 여동생까지 충성경쟁의 도구로 쓰는 독재의 실체를 드러내는 대목일 것이다.
결국 ‘위임통치’는 엉뚱한 데로 관심을 돌리려는 언론플레이용 작명(作名)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그게 북한의 ‘김여정 띄우기’와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이다. 여권 일각에선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의 카운터파트로서 김여정의 방미나 이방카의 방북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모든 게 과연 무관한가.
폐쇄적인 북한 권력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작은 움직임이라도 거대한 암투의 산물로서 미래를 읽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런 정보 판단에는 주관이나 편견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 정보기관은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하는 조직이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포장하는 데서 ‘정보의 정치화’는 시작된다. 이번 논란은 말재주 뛰어난 이른바 ‘정치 9단’이 원장으로 취임한 첫 국회 보고에서 일어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