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일본여자[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2일 03시 00분


<1> 유키카-서울여자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 나가이 히로시(永井博·73)의 그림은 이제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친숙해졌다. 그가 그린 그림엔 대부분 자동차와 수영장, 바다와 야자수 혹은 고층 빌딩이 만들어내는 야경이 등장한다. 바다의 미풍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은 그의 그림엔 여유와 낭만도 자연스레 함께 전해진다. 그 여유와 낭만 앞에선 삶의 고단함이나 고민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나가이 히로시의 그림이 한국에서까지 유명해진 데는 ‘시티팝’이란 음악의 부흥이 있었다. 이 ‘도시의 팝’ 음악은 장르라기보단 스타일에 가깝다. 팝과 퓨전재즈, 솔 음악 등을 적절히 섞어 만들어낸 세련된 스타일의 음악을 시티팝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팝 음악으로 경제호황기였던 일본에서 많은 자본을 들여 만든 음악이었다. 음악 스타일도, 이를 포장한 나가이 히로시의 그림도 풍요로웠던 한 시대를 상징했다.

그랬던 한때의 음악이 몇 년 전부터 다시 소환되기 시작했다. 시티팝이 유행할 때 태어나지도 않은 젊은이들이 시티팝 바이닐(LP)을 모은다. 한국과 일본, 나라를 가리지 않고 과거의 음악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가장 ‘힙’한 음악이 되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소비되고 있다.

음악은 당연하게도 시대를 반영한다. 풍요로운 시기에 시티팝은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등장했다. 이를 두고 다시 오지 못할 호시절을 그리워하는 젊은이들의 정서가 대변된 거라는 해석이 붙는다. 정서적인 부분을 잠시 떼어두고 보면 지금 들어도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도회적인 사운드가 음악에 담겨 있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시티팝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처음 경험해 보는 신선한 음악이다.

얼마 전 나온 유키카의 새 앨범 ‘서울여자’는 2020년의 한 경향을 대변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유키카는 ‘서울여자’가 아니라 ‘일본여자’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성우와 패션모델 등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해온 완전한 일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학창 시절부터 한국 문화의 세례를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소녀시대와 카라의 노래는 유키카를 서울여자로 만들어줬다. K팝을 동경해온 그는 한국어를 독학하고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유키카의 행보처럼 ‘서울여자’도 쉽게 정의 내리긴 어렵다. 한국의 기획사에 속한 일본인이, 일본에서 시작한 시티팝 음악을 완벽한 한국어로 노래한다. 일본 시티팝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작곡·프로듀서 팀이 과거의 유산을 새로운 감각으로 탄생시켰다. 앞의 두 문장에서 한국과 일본은 계속해서 교차한다. 이는 한국의 음악일까, 일본의 음악일까? 유키카의 대답은 명료하다. K팝을 듣고 자란 그는 스스로를 K팝 아티스트라 생각했다. K팝이란 커다란 범주 안에 시티팝이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K팝의 틀을 정하고 고정된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을 때 K팝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렇게 확장되고 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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