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폭풍 칭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한국의 성장률이 1위로 전망될 정도로 경제부총리가 경제사령탑으로서 총체적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부동산 정책 실패로 홍 부총리 등 경제정책 라인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는 와중이었다.
대통령의 공개 칭찬은 이틀 전 OECD가 보고서를 내고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2%에서 ―0.8%로 상향 조정한 것이 근거였다. 홍 부총리는 페이스북에 이 보고서를 분석한 2400자 분량의 긴 글을 올렸다. “회원국 성장률 순위에서 압도적 1위를 유지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역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우리가 가장 선방했다”는 게 요지였다. 문 대통령은 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링크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코로나가 재확산되면 성장률이 ―2.0%로 후퇴할 것이라는 OECD 전망은 쏙 빼놨다. 올해 기저효과에 따른 영향이 있긴 하지만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37개국 중 34위라는 점도 눈감았다. 1, 2분기 역성장 골이 깊어 OECD 전망치(―0.8%)를 달성하려면 3분기부터 ‘V자 반등’을 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희망사항에 그칠 여지도 크다.
현실과 동떨어진 홍 부총리의 낙관론은 한두 번이 아니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는 ‘사상 최악’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지표가 줄줄이 나온다. 실업자 114만 명, 청년층 체감실업률 25.6%, 구직을 단념한 비경제활동인구 1665만 명 등이다. 이런 통계에도 홍 부총리는 정부가 그동안 잘 쓰지 않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5월부터 고용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 부총리는 20일 나온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두고도 “정부의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으로 소득 분배가 개선됐다”고 자평했다. 소득 격차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은 4.23배로 작년 2분기(4.58배)보다 낮아지긴 했다.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이 지표는 수치가 낮을수록 분배가 개선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14조 원이 들어간 긴급재난지원금 요인을 제거하면 이 지표(7.04배→8.42배)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저소득층이 벌어들인 근로·사업소득이 고소득층보다 훨씬 많이 줄어든 탓이다.
취임 1주년 때 홍 부총리가 페이스북에 썼듯 ‘경제는 심리’다. 낙관적 인식이 번지면 소비가 살아나고 경제가 활기를 띨 수 있다. 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애써 유리한 통계만 보면서 현실과 괴리된 낙관론에 매달리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섣부른 낙관론은 빗나간 처방을 부르고,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기재부 출범 이후 수장의 평균 재직 기간은 1년 6개월 남짓이다. 홍 부총리는 최근 취임 1년 8개월을 넘기며 장수 장관의 문턱을 넘어섰다. 윤증현 전 장관의 최장수 기록(2년 4개월)을 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은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홍 부총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직시하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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