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옆을 스치듯 지나던 세 명의 축구팬들이 뜬금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눈으로 보기에도 선명하게 주변에 침이 튀었다. 쓰고 있던 마스크를 바로 버리고 새 것을 착용했다. 손 소독제로 손은 물론 팔뚝, 목까지 닦아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23일(현지 시간) 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지역 연고 프로축구팀인 ‘파리생제르맹(PSG)’의 홈구장 ‘파크 데 프랭스’ 일대의 모습이다. 이날 결승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무관중으로 열렸다. 경기를 직접 볼 수 없는 파리 시민 수천 명이 파리 16구에 위치한 PSG 홈구장 일대에서 응원에 나섰다.
PSG가 창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한 까닭에 대부분 흥분과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시작 전 파리시와 경찰은 ‘또 다른 의미’에서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응원에 나선 대규모 축구팬들로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최근 일일 신규 확진자가 4000명이 넘는 등 2차 확산이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준결승이 열린 18일 수많은 인파가 샹젤리제 등 번화가로 쏟아져 나와 마스크 없이 서로 얼싸안고 춤을 췄다. 결승전 당일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 코로나 2차 확산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커지자, 이날 샹젤리제 일대는 차량 통행이 통제됐다. 주변 지하철 17곳도 폐쇄됐다.
그 대신 PSG 홈구장 일대에서는 공식 응원이 허용됐다. 다만 마스크 착용 의무지역으로 지정해 철저한 단속을 벌이겠다고 파리시는 선언했다. 그러나 현장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방역이나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응원에 나선 시민의 절반가량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일부는 경찰 검문 장소에서만 마스크를 썼다. PSG 깃발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군중 사이를 오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기자가 한 팬에게 ‘코로나 감염 걱정은 없냐’고 묻자 “PSG가 오늘 지면 어차피 모두 죽는다”며 웃었다.
오후 11시 경기가 끝나자 일부 축구팬들은 샹젤리제 거리가 있는 8구로 몰렸다. 방역 준수는커녕 차량에 불을 지르고 매장 유리창을 파손해 148명이 체포됐다. 그나마 PSG가 결승 상대인 바이에른 뮌헨에 0 대 1로 져서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는 ‘운이 좋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PSG가 승리했다면 더 많은 인파가 ‘광란의 밤’을 보내면서 코로나 확산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프랑스의 누적 확진자는 24만 명, 사망자는 3만 명이 넘었다. ‘져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코로나19 경계심이 부족하다면…. 프랑스는 축구에 이어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패배할 것 같다는 걱정이 커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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