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경의[임용한의 전쟁史]〈12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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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탱크는 독일의 괴물 전차 ‘티거(타이거)’다. 경량 탱크가 20여 t, 중형 탱크가 40t 정도이던 시절에 티거의 중량은 60t이었다. 무겁다고 우수한 건 아니지만 이 중량이 장갑의 두께를 의미한다면 다르다. 장갑이 방패라면 창에 해당하는 전차포는 독일의 전설적인 대전차포, 세계의 어떤 전차도 격파할 수 있으며, 장거리 정확도도 최고였던 88mm 포를 달았다. 이 포를 사용해서 평균의 독일 포수들은 1500m 거리에서 적 전차를 명중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티거를 타고 150대가 넘는 전차를 격파했던 에이스가 오토 카리우스 중위이다. 그의 회고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소련 전선에서 후퇴할 때 카리우스의 티거 중대는 어느 보병부대와 함께 맨 후위에서 독일군 본대를 엄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어느 마을에 주둔하고 있을 때 소련군이 야간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소련 전차는 포격을 가하며 마을로 진입을 시도했다. 티거는 그들을 모두 격파했는데, 그들이 주의를 끄는 사이 다른 전차가 조용히 마을로 진입했다. 그 전차는 독일 티거와 충돌하는 바람에 위치가 드러났고 독일군의 공격에 장갑이 관통당했다.

다음 날 독일군 보병이 부서진 전차에 접근하자 갑자기 전차 안에서 수류탄이 날아왔다. 소련 전차병들은 살아 있었고, 최후까지 독일군과 싸웠다. 분노한 카리우스는 그 끈질긴 소련 전차장에게 엄청난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아마 그의 분투와 감투(敢鬪) 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 당시에는 왜 분노했을까? 동료 병사들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카리우스의 분노와 경의는 서로 모순되는 행동이 아니다. 세상사에는 항상 이런 양면적인 진실이 있다. 그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지성의 임무는 이런 시야를 넓혀 주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임용한 역사학자
#티거 전차#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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