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민주적 방역과 독재적 방역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6일 03시 00분


동아시아 국가 성공적 방역에 권위주의적 체제도 큰 영향
K방역에도 권위적 요소 많아… ‘공권력이 살아있음’ 운운하며
방역 독재 유혹에 빠져선 안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방역만 떼어 놓고 보면 효율성에서 공산주의를 따라갈 체제가 없다. 소련은 1930년 아제르바이잔의 한 지역에서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군대를 투입해 주민들을 소개하고 지역 전체를 불태운 뒤 농약 클로로피크린을 뿌렸다. 클로로피크린의 독성이 워낙 높아 3년간 그 땅에서 채소 재배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련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몇 개월 전 코로나19의 발상지인 우한에서 중국 공산당은 서방 국가는 꿈도 꿀 수 없는 감시와 통제로 인구 1000만 도시를 76일간이나 봉쇄한 끝에 최근 한 워터파크에서 수천 명이 빼곡히 모인 파티를 열어 성과를 과시했다. 방역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권리와 조화시키는 나라에서나 어려운 것이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권리보다 앞세우는 나라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성공적인 방역을 했다. 한국은 약 1만80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310명이 사망했다. 인구가 한국의 두 배인 베트남은 확진자 약 1000명, 사망자 27명이다. 인구가 비슷한 태국은 확진자 약 3400명, 사망자 58명이다. 인구가 절반인 대만은 확진자 약 500명, 사망자 4명이다. 한국은 오히려 성적이 처지는 편이다. 다만 일본(확진자 약 6만3000명, 사망자 1181명)에 비하면 성공적이며, 일본 역시 서방 국가에 비하면 성공적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방에 비해 성공적 방역을 하는 요인이 수수께끼 같아서 ‘팩터(factor) X’로 불리기도 한다. 동아시아인이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이 적고 뺨 키스 등의 습관이 적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하나 더 있으니 동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적 성격이다.

K방역에는 신속한 대량 진단 능력만이 아니라 철저한 감염자 동선 추적이 포함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역학조사에 부여된 막강한 권한이다. 한국은 역학조사 시 그 조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 방해, 회피하는 행위 외에도 거짓말을 하거나 고의로 사실을 누락, 은폐하는 행위까지 처벌한다. 뒷부분은 2015년 감염병관리법 개정 때 도입됐다. 범죄자라도 스스로에 대해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는데 역학조사의 대상이 되는 국민은 그럴 권리도 없다.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처벌된다. 이것이 K방역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일본만 해도 사전에 피해보상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영업정지 명령을 함부로 내리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피해 보상 규정이 있다. 하지만 걸핏하면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지는 노래방 PC방 등에 현실적인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감염병 환자의 경우 국가 비용으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여권은 가능한 한 감염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며 구상권을 행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 초기 언론은 신천지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침묵하는 사이 이재명 경기지사 등 대선 주자를 꿈꾸는 여권 지자체장들이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경쟁을 벌이면서 방역 행정은 점점 더 고압적이 됐다. 결국 밥 먹을 때와 차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우한에나 있을 법한 괴기한 행정명령까지 내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를 겨냥해 현행범 체포 운운하면서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라”고 했다. 섬뜩한 표현인데 그마저도 공정하지 못하다. 이 표현은 수시로 관공서를 점거하는 등 공권력을 무시해온 민노총을 향해 먼저 사용했어야 하는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편향성과 반대자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서방 국가보다 방역을 잘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방역을 못했다고 의기소침할 것도 없다. 권위적일수록 방역의 효율이 높아지는 법칙이 통하고 있을 뿐이다. K방역에 대단한 비법이 있었던 양 착각해서 목표 확진자 수를 비현실적으로 낮게 잡고 그 목표에 매달리다가 방역 독재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신천지는 코로나 위기 초기라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의 경솔함은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 혼나야 한다. 다만 대통령 자신도 경솔해서 짜파구리 파티를 벌이며 파안대소하던 때를 잊지 말라. 그래야 권력의 절제된 사용이 가능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주적 방역#독재적 방역#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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