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초기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이 조세 개편안을 설명하면서 “마치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국가 운영을 위해 세금은 필요한 것이고, 이것을 납세자가 덜 고통스럽게 걷어야 한다는 고전적인 비유다. 말인즉슨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민을 털 뽑히는 거위에 비유한 것이 국민감정에 불을 질렀다.
현 정부의 과세 방식은 스스로 표방하듯 ‘핀셋 증세’ ‘부자 증세’다. 지난달 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소득세 최고세율을 크게 올리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세율을 올렸지만 최고위층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부자들만 콕 찍어서 이들에게 왕창 뜯어내는 것이니 대다수 국민들은 안심하시라는 말이다. 이 말이 정치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7·10 부동산대책’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홍 부총리의 설명으로도 2배 정도 올랐다. 최고세율은 3.2%에서 6.0%로 올랐다. 여기에 종부세의 20%를 내야 하는 농어촌특별세가 더해지면 7.2%가 된다. 보유세는 집을 갖고 있는 한 매년 내야 하는 세금이다. 정부의 협박성 의도와 달리 소유자가 집을 매물로 내놓지 않는다면 대략 14년 정도 만에 집 전체를 세금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판다고 할 때까지 고율의 세금으로 주리를 틀다가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 정부가 강제 수용해 간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아무리 3주택 이상(조정대상지역 2주택) 합산 공시가격 94억 원 이상의 극소수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하지만 정상적인 세정(稅政)이라고 보기 어렵다. 광기(狂氣)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미 세율 세계 1위인 양도세를 보자. 김조원 전 대통령민정수석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말 소유한 2채 가운데 잠실 아파트를 22억 원에 내놓았다. 그대로 팔렸다면 양도차익은 17억7000만 원. 이 중 양도세로 9억7000만 원을 내야 했다. 두 채 모두 팔지 않는다면 올해 내야 할 종부세는 대략 1000만 원. 내년에는 2000만 원 정도로 2배 오른다. 장관급인 수석직을 포기한 것이 양도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주택 수를 가지고 인사를 하는 행태가 못마땅해서인지 알 수 없다. 뭐가 됐든 둘 다 모두 세계 토픽감이다.
부동산 세금뿐 아니라 소득세, 법인세도 핀셋 방식 증세가 이뤄졌다. 소득세는 연소득 10억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한 최고세율이 40%에서 45%로 올랐다. 지방세를 포함하면 49.5%다. 이미 고소득층이 지는 세 부담이 결코 작지 않은 수준이다. 2018년 기준 소득 상위 1%의 개인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전체 수입의 11%. 전체 소득세 중 이들의 납부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42%다. 상위 10% 소득자가 전체 소득세의 78%를 내고 있다.
급여생활자들이 포함된 근로소득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상위 10%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74%를 내고, 하위 39%는 한 푼도 내지 않는 구조다. 이 면세자 비율이 일본만 해도 15.5% 정도다. 늘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세정 원칙이 제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균등 비율로 내는 것보다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이 누진적으로 내는 것이 원칙적으로 조세 형평상 맞고 그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정도가 있다. 나라마다 다르고, 정부마다 다르겠지만 부자는 얼마든지 때려도 좋다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거나 혹은 납세 당사자가 세금을 내고도 오히려 죄인 취급 받는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은 분명 과한 것이다. 그런 제도나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차라리 거위 털 뽑기 방식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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