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던 강모 씨(35)는 지난달 폐업했다. 2명이던 직원을 1명으로 줄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줄어든 매출이 수개월째 회복되지 않아서다. ‘다행히’ 가게 인수자가 나타났고 권리금 45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강 씨가 공인중개업소에 줘야 할 법정 중개보수는 250만 원. 하지만 공인중개업소는 50만 원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권리금에 대한 중개보수였다. 강 씨는 “장사할수록 손해라 하루라도 빨리 폐업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달라는 대로 줬다”며 “망해 나가는데 법에도 없는 수수료까지 받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소상공인들이 과도한 권리금 중개보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권리금은 장사하는 데 필요한 시설, 영업 노하우 등을 넘기는 대가로 기존 점포에 세 들어 장사하던 상인이 새로 들어오려는 상인에게 받는 금액이다. 권리금에 중개보수를 부과하는 법적 근거는 전무한데도 공인중개업계에선 가게 자리나 인수자를 소개해줬다는 명목으로 오래전부터 권리금 중개보수를 챙겨 왔다.
문제는 규정이 없다 보니 권리금 중개보수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점이다. 중개보수를 더 받으려 권리금을 부풀리는 사례도 빈번하다. 지난달 말 권리금 4500만 원짜리 식당을 인수하려던 A 씨(34)는 가계약 다음 날 공인중개업소에서 기존 상인이 요구한 권리금보다 500만 원이나 높여 부른 사실을 알고 계약을 파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인중개업계 관계자는 “권리금 부풀리기는 오랜 관행이다. 별 노력 없이 건당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챙길 수 있지 않냐”고 귀띔했다.
업계에선 권리금 중개보수는 권리금의 5∼10% 정도로 추정한다. 법정 중개보수 상한선(0.9%)보다 한참 높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권리금 중개보수(2018년 기준)는 115만5000원으로 평균 보증금과 월세로 추정한 법정 중개보수(127만5120원)와 맞먹는다.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권리금 중개보수는 당사자끼리 ‘협의’해서 정하면 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깊어진 불황으로 사정이 절박한 상인들은 공인중개업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최재석 서울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장(변호사)은 “권리금은 보증금만큼 액수가 큰데 상한선 없이 중개보수를 물리면 누가 감당할 수 있겠냐”며 “과도한 권리금 중개보수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법지대에서 소상공인들이 경제적 손실을 입는 일이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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