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베 전격 사퇴, 韓日관계 파행 끝낼 모멘텀 되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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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병 재발로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임한다고 말했다. 24일 ‘일본 최장수 총리 재임’ 기록을 세운 지 나흘 만이다. 다만 후임 자민당 총재가 선출될 때까지는 직을 유지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이후 7년 8개월여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아베 1강(强)’의 독주체제를 이어왔다. 집권기간 내내 역사수정주의적 관점으로 과거사를 미화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평화헌법’ 개정 등 일본을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려는 집념을 드러내 주변국과의 마찰을 가져왔다. 국내적으로는 아베노믹스를 통해 경기부양에 한동안 성공하는 듯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나락에 떨어졌다.

아베 총리가 사퇴한다 해도 당장 일본의 대한(對韓) 정책 기조가 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보수로 치닫는 일본 자민당과 혐한 세력을 부추기는 극우 세력의 성향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간사장 주도로 임시위원회를 설치하고 후임 총재선거 일정을 정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우호적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아베 총리 등 자민당 내 반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아소 다로 부총리 등 한국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인사가 후임이 될 경우에는 정책 변화를 기대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양국은 강(强) 대 강 대결을 벌여왔다.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도 이달 4일부터 가능해져 양국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극한으로 치닫는 미중 대결 속에서 모두 지는 게임이다.

그간 꽉 막힌 한일관계가 이어진 데는 양국 정상들의 상대국에 대한 강경하고 부정적인 태도가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아베의 퇴진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제든지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양국 정부가 최대 쟁점인 강제징용 해법을 만들어 테이블에 올려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 리더십 변화라는 기회를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으려면 당장이라도 부지런히 전략을 짜고 물밑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베 사퇴#일본 수출규제#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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