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동순두부[횡설수설/안영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1960, 70년대만 해도 서울 남대문 안쪽 북창동의 넓은 공터는 경기 북부에서 재배한 야채와 곡물 등이 무악재 고개를 넘어와 모여드는 집하장이었다. 새벽이면 채소를 떼다 팔려는 도매상, 인력시장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점심과 저녁때가 되면 서울시청, 한국은행, 인근 대기업 직원들이 몰려들어 먹자거리를 형성했다. 그때 인기 있는 메뉴가 순두부찌개와 북어해장국이었다. 값이 싸면서도 육고기 대신 손쉽게 단백질을 보충시켜 주는 영양식이었다. 순두부 하면 북창동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창동의 순두부는 미국에 건너가 더 주목을 끌었다.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윌셔가에 본점을 둔 북창동순두부(BCD Tofu House)는 2010년대에 분 웰빙푸드 바람을 타고 돌풍을 일으켰다. 1996년에 문을 연 이후 현재 미국 12개 도시, 17개 매장에서 수천만 달러 매출을 올리는 프랜차이즈로 성장했고 일본 중국 등지로 지점을 확장시켰다. 미국 유명 스포츠 스타, 영화배우들도 순서를 기다리면서까지 찾는 명물이 됐다. 한국으로도 역수출됐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같은 이름의 업체 ‘북창동순두부’와는 주인이 다르다.

▷미국 북창동순두부 창업자 이희숙 대표가 지난달 18일 6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는 부고 기사에서 “이 대표의 요리는 그 자체가 미국의 문화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음식평론가들은 순두부찌개가 미국 문화의 주류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외국인이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깬 데 더해, 한국 콩에 비해 풋비린내가 심한 미국 콩의 단점을 제거함으로써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웰빙음식으로 인정받았다는 평이다. 음식비평가 조너선 골드는 경쟁력 있는 K푸드로 불고기, 비빔밥 대신 순두부찌개를 꼽았다. 이 대표는 생전에 제조 비결을 밝히면서 말랑말랑한 연두부, 매콤한 소뼈 육수, 신선한 재료 등 표준화한 맛을 내기까지의 노하우를 공개하면서도 끝내 ‘양념’만은 숨겼다.

▷순두부가 언제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유목생활을 하던 북방민족이 염소 양 등 동물 젖을 응고시킨 치즈로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한 반면, 만주와 한반도 일대 정착 농경민족은 콩을 찌고 삶아 만든 두부로 단백질을 보충했다고 한다. 황광해 음식평론가는 “조선시대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미 연두부에 미꾸라지를 더한 초두부탕 요리법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 순두부 요리에 남들보다 더 많은 정성을 담아 세계적 음식으로 키워낸 이 대표에 이어 제2, 제3의 북창동순두부들이 나와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북창동순두부#순두부찌개#미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