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지난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아쉽게 생각한다. 쾌유를 기원한다”면서 “새로 선출될 총리 및 새 내각과도 우호협력 증진을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보다 10여 분 먼저 나온 입장이었다. 외교부는 타국의 내정(內政)에 특별히 논평할 게 있느냐며 소극적이었으나 청와대가 나서 이런 메시지를 주도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가 사임 뜻을 밝히자마자 차기 총리를 언급한 청와대의 반응에는 일본을 바라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참모들의 속내가 담겨 있다. 사실 한일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작금의 한일관계는 모두 아베 총리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었다. 당장 정부 안팎에서 ‘누가 차기 총리가 되든 아베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한일관계 악화는 아베 총리의 등장과 함께 가속화된 일본 우경화와 맞물려 있는 게 사실이다. 고노 담화를 검증하겠다며 시작한 역사 수정주의부터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헌법 개정까지 아베 총리의 우익 노선은 한일관계를 긴장과 갈등으로 몰아넣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아베 탓’만일까.
문재인 정부는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고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엔 아예 손을 놓아 관계 악화를 방치했다. 그러니 ‘문 대통령-아베 총리’ 조합으로는 어떤 해결도 무망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제 한쪽이 퇴장한다고 해서 급반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낙관론일 뿐이다. 차기 총리에 지한파·친한파 인사가 된들 일본의 기존 입장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 리더십의 교체는 전반적인 기류의 변화를 낳기 마련이고 감정 다툼으로 얼룩진 한일관계에도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침 한국에도 지일파 인사가 새 여당 대표로 선출된 것에 일본 측도 주목하고 있다. 이런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우리가 선제적인 외교에 나서 일본 측의 마음을 움직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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