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있어도 사랑해”[2030 세상/정성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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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내가 아는 어떤 남자애는 장거리 연애의 달인이다. 영어를 잘해서인지, 모험을 떠나는 사람을 좋아해서인지 애인이 늘 외국에 있다. 모두가 집에 있는 시기에, 이 친구라면 그 방면에 도사일 것 같아 물었다.

“너 ‘롱디(Long Distance의 줄임말·장거리 연애)’ 전문가지? 떨어져 있어도 곁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노하우가 있니?”

“일단 화상채팅은 잘 안 해. 통화는 자주 하지. 그게 비법이야.”

모두가 줌(화상채팅 앱)을 이용하려는 시대에, 무슨 이유에서일까?

“스카이프나 줌은 가장 현실 연애와 유사한 소통법 같지만, 실은 아닌 것 같아. 왜냐면 실제로 데이트를 할 때도 가장 편한 이야기는 ‘각 잡고’ 서로를 부담스럽게 쳐다보면서 나오는 게 아니니까. 같이 걸을 때, 아니면 서로 딴짓을 할 때 가장 편한 대화가 오고 간단 말이지.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다’라고 의식 안 할 때.”

“이를테면 산책 하면서 나누는,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대화 같은?”

“맞아. 100%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어색해지는데 한 90%만 기울이면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통화는 정말 좋아. 누워서도 할 수 있고, 다른 일을 살짝 하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 반면 화상채팅은 서로를 의식적으로 쳐다봐야 하잖아. 조금이라도 공백이 생기면 ‘지금 어색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대화 자체가 일처럼 느껴지지. 망하는 지름길이야.”

“어쩐지. 요즘 줌을 자주 하는데 피로하더라. 그럼 통화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젠데? 자기 전?”

“출퇴근길이 가장 좋고, 아니면 요리할 때. 90%만 집중하기 딱 좋아!”

영화 ‘우리는 사랑일까’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치킨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지만 뒤에서 누가 안아주면 더할 나위 없는 시간들. 그럴 때 전화해 주면 좋구나.

“잠깐, 여기서 비대면에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어. 전화를 하잖아. 그럼 뭐라고 해?”

“음…, 뭐해?”

“그렇지. ‘뭐해?’ 이렇게 시작할 거 아냐. 여기서 쓰면 안 되는 표현은 ‘그냥’이야. 무슨 중2가 연애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엄청난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사실이야.”

“그런데 전화해서 ‘뭐해?’ 물었을 때, ‘그냥 있어’ 하면 설레는데. 이제 나랑 놀면 되니까.”

“일반 연인 관계는 그게 가능할 수 있어도 롱디 여자친구는 그냥 있어도 나랑 놀 수가 없잖아.”

“롱디 애인이 너무 신나게 놀고 있으면 섭섭해할 거면서?”

“초반엔 그럴 수 있지만 몇 년 지나면 그렇지도 않아. 롱디 중 타국에 있는 사람은 외로움과 싸우기 때문에 그냥 재밌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길 원하게 돼.”

“너는 신뢰에 기반한 사랑을 하는구나?”

“비대면으로 하려면 기본이지.”

그리고 친구는 애인과 통화하러 갔다. 좋은 팁을 들었으니 바로 실천해야지.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떨어져 있지만 항상 곁에 있는 것 같은 할머니와 통화하며 혼자 먹을 점심을 만든다.

서울시가 ‘1000만 시민 멈춤 주간’에 돌입했다. 우정도, 사랑도, 믿음도 모두 흩어짐으로 증명되는 시간들. 슬프지만 훗날 돌이켜보면 이런 날도 있었지, 하며 웃을 수 있기를. 집에 있으면서, 집에 있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장거리 연애#코로나19#화상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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