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3국이 올해 2분기(4∼6월)에 기록한 전 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각국 경제가 모두 영향을 받았지만 유독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195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2분기에 영국(―20.4%), 스페인(―18.5%), 프랑스(―13.8%), 미국(―9.5%) 등 서구 주요국의 성장률은 일본보다 더 나빴다. 31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617만 명을 넘었다. 스페인(45만여 명), 영국(33만여 명), 프랑스(27만여 명)의 확진자도 일본(6만여 명)보다 훨씬 많다.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은 왜 다른 나라보다 코로나19 충격을 많이 받은 것일까.
○ 민간 소비·수출 쌍끌이 타격
도쿄 미나토구에 사는 한국 대기업의 주재원 A 씨. 그는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를 발령했던 4월 이후 도쿄를 벗어난 적이 없다. 재택근무를 하니 외식비가 들지 않고 와이셔츠와 구두 등도 살 필요가 없었다. 가족여행 및 자녀들의 수학여행 계획도 줄줄이 취소됐다. A 씨는 “2분기에 돈을 쓴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일본 경제가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은 상당수의 일본인이 A 씨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GDP의 약 57%를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2분기에 8.2% 감소했다. 전문가 예상치(―7.1%)보다 감소 폭이 훨씬 컸다. 특히 외식, 여행, 소매품 소비가 큰 타격을 입었다.
2분기 수출 역시 18.5% 감소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1분기(1∼3월) ―25.5% 감소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나쁜 수치다. 일본산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주요 시장인 미국, 중국, 서유럽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여파다.
관광 수입 감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을 찾는 연간 3500만 명의 외국인이 일본에서 쓰는 돈은 통계상 수출로 잡힌다. 지난해 기준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 관련 소비는 4조8000억 엔(약 54조 원)으로 전자부품 수출(약 4조 엔)을 웃돈다. 정부가 4월부터 사실상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면서 이들이 유명 관광지를 다니며 뿌렸던 이 수조 엔이 사라졌다.
○ 고령화·아날로그 문화 등 구조 문제 산적
고령화 등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코로나19의 악영향을 증폭시켰다. GDP 성장은 노동 투입, 자본 투입, 생산성에 비례한다. 일본은 노동 부문에서 치명적 약점을 지녔다. 2007년 이후 13년간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더 많아 인구가 자연감소하고 있다. 총무성이 발표한 올해 1월 1일 기준 인구는 1억2427명. 한 해 전보다 50만5046명이 줄었고, 감소 폭 역시 1968년 조사 시작 이후 가장 컸다.
노동 시장에서 중요한 생산가능인구(15∼64세) 또한 꾸준히 줄고 있다. 내각부는 지난해 40∼64세 중장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61만3000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생산가능인구 7507만 명 중 약 0.8%가 히키코모리란 뜻이다. 가뜩이나 일할 사람도 부족한데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할 중장년층의 히키코모리 문제까지 겹치니 GDP가 쑥쑥 늘어나기 어렵다.
생산성 또한 취약하다. 2018년 기준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6.8달러(약 5만5000원)로 미국(74.7달러)의 약 63%다. 2000년에는 미국의 70%였지만 2010년 65%로 줄었고, 최근 더 떨어졌다.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201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21위, 주요 7개국(G7) 중 꼴찌다.
‘제조업 왕국’을 가능케 한 특유의 가이젠(改善) 문화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맞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데는 약하다는 의미다.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신기술이 나오면 시장에 빨리 접목시켜야겠다는 생각부터 하는 반면 일본은 예술처럼 깊숙이 파고들어 연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전반에 아날로그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며 “그 흔한 디지털도어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로 과도한 아날로그 의존 문화의 문제점이 더 드러났다. 직장인이 재택근무를 하려면 반드시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거나, 각 보건소가 관할 당국에 감염자 수를 통보할 때 손으로 집계한 후 해당 통계 수치를 팩스로 보내는 식이다. 민간인의 우주여행이 가시화한 시점에 이토록 디지털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터라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여러 개의 도장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다. ‘미토메인(認印)’으로 불리는 일반 도장, 공식 인감(印鑑), 은행에서 쓰는 은행인(銀行印), 택배를 받을 때 쓰는 간이 도장 샤치하타까지…. 용도와 목적에 따라 필요한 도장도 제각각이다.
일본은 그간 이 문제를 압도적 자본력, 즉 재정을 풀어 메워왔다. 재정 확대가 엔 약세로 이어져 수출경쟁력을 일정 부분 높이는 효과도 있었지만 가뜩이나 많은 정부 빚은 더 늘었다. 2012년 말 932조 엔(약 1경500조 원)이었던 국가 부채는 최근 1182조 엔으로 뛰었다. GDP 대비 부채 비율 역시 189%에서 207%로 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정부 부채 역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여겨진다.
○ ‘잃어버린 20년’의 후폭풍 여전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폭발한 이후 일본 경제가 약 20년간 침체되면서 생긴 부작용, 즉 디플레이션 또한 코로나19 충격을 더 증폭시켰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줄곧 물가가 떨어졌다. 내일이면 TV 가격이 더 떨어지는데 오늘 TV를 살 사람이 없다.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기업 경영은 더 악화됐다.
2013년 이후 경제가 잠시 살아나면서 물가도 0.5∼1% 내외로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다시 디플레 위험이 어른거린다. 일본은행은 7월 향후 5년간 물가상승률을 0.68%로 예상했다. 전 분기 예측치보다 0.22%포인트 떨어졌다. 소비자들이 물가 하락을 점치고 지갑을 더 닫을 가능성이 커졌다.
비정규직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2001년 출범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의 근간이었던 ‘평생 고용’ 대신 과감한 노동유연화 제도를 속속 도입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가 꾸준히 늘었다. 총무성에 따르면 2003년 30.4%였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2018년 37.9%로 상승했다.
코로나19가 터지자 기업들은 이 비정규직부터 해고했다. 특히 외식, 소매, 의류 업종에서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경제 위기 때 실업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6월 실업률은 2.8%로 많이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된다면 내년부터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코로나19 발발 후 정부가 기업에 휴업수당 보조금 등을 줘가며 실업률을 관리해 왔지만 재정의 한계로 이 돈을 무한정 주긴 어려운 탓이다.
○ 코로나19 회복 시점, 빨라야 2024년
일본 경제는 향후 어떻게 될까. 2분기에 기록적인 GDP 하락을 경험했기에 기저 효과에 따라 3분기 성장률은 플러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중장기 전망은 밝지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8월 경제전문가 2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전의 경제 상태로 돌아가는 시점을 묻자 가장 많은 9명이 ‘2024년’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후폭풍을 회복하는 데 최소 4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혁신 DNA 부족 등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강철구 교수는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혁신에는 한계가 있다. 막부시대 1000년을 거쳐 오면서 사회 전반이 계급에 익숙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잘하겠지’란 생각으로는 정보기술(IT) 산업을 선도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역시 “인구가 줄어드는 국가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언제 세계 3위 경제대국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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