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동아일보에 실린 창간 100주년 기획 ‘극과 극이 만나다’ 특별취재팀에 e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메일을 보낸 이는 조윤정 고려대 의대 교수. 그는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임을 인식하는 게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란 소감을 보내왔다.
‘극과 극이 만나다’는 사실 제목처럼 자명한 기획이다. 갈수록 극단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한국 사회에서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일대일로 대화를 나눠보자는 취지다.
자리만 마련하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실상은 녹록지 않았다. 반대 입장과의 만남이 부담스러워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많았다. 속내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가 생길지 모를 ‘후폭풍’을 겁내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시민이 용기를 내줬고, 극과 극 사이에 오고 간 생생한 현실을 목도했다.
6명을 비롯해 사전 취재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거짓말처럼 다들 들려준 얘기가 있다. “처음엔 걱정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됐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직장인 손지수 씨(29)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최지욱 씨(27)와 대화하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영남대 출신인 최 씨가 들려준 지방대생의 현실이 충격적이었다. 손 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학원이 없어 영상 편집을 독학으로 배웠다’는 지욱 씨의 고백은 미지의 세계였다”며 “내가 살아왔던 세상이 ‘반쪽’이었다는 걸 절감했다”며 고마워했다.
서울 강남에서 세 자녀의 대학입시를 치른 김영실 씨(48)를 만난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실은 두 사람은 대화 내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헤어질 때도 전혀 공감하지 못한 눈치였다. 하지만 최 교수는 이런 얘기도 남겼다. “그래도 미처 몰랐던 삶의 어려움을 엿본 기분이 듭니다. 아이 셋을 키운 어머니의 말은, 방향에 동의할 순 없어도 울림이 있어요. 뭔가 크게 깨친 느낌이에요.”
‘대화’는 그처럼 우리네 짐작보다 훨씬 큰 힘을 지녔다. 스물네 살 동갑인 김연정 곽병대 씨의 대화 전후 텍스트를 한규섭 서울대 교수가 ‘투 모드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자. 사전 인터뷰에선 김 씨 혼자 썼던 ‘채용박람회’란 단어는 대화를 진행하며 두 사람에게 공감의 단어가 됐다. 곽 씨가 “지방에선 채용박람회가 거의 열리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한 순간, 닫혀 있는지도 몰랐던, 작지만 소중한 다른 세상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극과 극이 마주하는 건 당연히 두렵다. 이해하기 힘든 상대와 대화하는 일은 누구나 낯설고 불편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해할 수 없다’는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의 이음동의어인 건 아닐까. 타인의 세상은, 별로 멀지 않은 당신의 세상 옆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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