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이 끝난 뒤 여권엔 ‘열린우리당 전철을 밟지 말자’는 주의보가 내려졌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말씀과 행동에 더욱 신중을 기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그 고삐가 확 풀렸다. 부동산 문제,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부터다. 지난달 만난 여권 핵심 인사는 “고비다. 코로나 방역이 최우선이다. 정권 후반기 지지율은 물론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의 성패도 여기서 결정 날 것”이라고 했다. 정권 핵심부의 위기감이 크다는 얘기였다. 얼마 뒤 김원웅 광복회장은 고(故) 백선엽 장군을 향해 “사형감”이라며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여권 인사들은 곳곳에서 ‘방역 방해 세력’을 향해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이후 민주당 지지율은 반등했다. 여권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정권말 위기론’은 진화됐다.
정치인의 막말은 다분히 의도된 경우가 많다. 증오와 배제 프레임은 위기에 몰린 집권세력의 단골 메뉴다. 권위주의 시절 집권세력은 ‘색깔론’ ‘종북’을 앞세워 야권을 탄압했고, 여론의 반전을 유도했다. 지금 여권의 ‘친일파 척결’ 주장도 야당은 비슷한 논리로 바라본다.
하지만 최근 여권발 증오의 막말은 정치권 밖, 보통 사람들까지 겨냥하며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문제로 여권이 수세에 몰렸을 때는 다주택자가 제물이 됐다. 소병훈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범죄로 다스려야 한다” “국민의 행복권을 뺏어간 도둑들”이라고 했다. 집값 상승에 떠는 보통 사람들의 불안을 다주택자들의 탓으로 떠넘긴 셈이다.
요즘 여권의 주 타깃은 의료계다. 지난달 31일 열린 국회 예결위에서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최대집 의협 회장을 “제2의 전광훈”이라고 불렀다. 1일 예결위에선 허종식 민주당 의원이 사회부총리에게 “어차피 지키지도 않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대학병원에 권고해 다 폐지시키면 어떻겠냐”며 의사들을 비꼬았고, 최민희 전 의원은 2일 페이스북에서 “어느덧 의사선생님 호칭이 ‘의새’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했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시원하다”고 환호한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1일 라디오에서 ‘조국 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두고 “흑서를 100권 낸다 해도 바뀌지 않는다. 40%는 (검찰 수사가) 문제 있다고 본다”고 자신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그런 말들이 자신을 찌르는 칼이라는 것을 모른다. ‘국난 극복’에 동의하다가도 막말이 터져 나오면 “너희가 더 꼴 보기 싫다”며 고개 돌리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많은 초선 의원들은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이는 ‘증오의 정치’로 비쳤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고립됐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 체제가 시작됐다. 그는 총선 직전 “미움의 정치를 청산하지 않는 한 막말은 계속된다”고 경고했다. “지도자들부터 마음에서 미움을 털어내야 한다. 저부터 더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그의 다짐이 ‘열린우리당 반성’처럼 잠깐의 레토릭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