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는 승선 금지![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7〉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4일 03시 00분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처음에 배에 올랐을 때 생소한 단어가 ‘deratting’이었다. 외국에 입항하면 선박에 쥐가 없다는 사실을 선장이 확인해주어야 입항이 가능하다. 외국의 쥐가 선박을 통해 자국에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입항 국가는 선박 내 쥐가 모두 박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구서증서(驅鼠證書·deratting certification)’를 요구했다. 부두와 선박을 묶어주는 밧줄 위에도 타원형의 철판이 덮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쥐가 밧줄을 타고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다.

선박은 외롭게 바다에 떠다닌다. 쉽게 구원을 요청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 안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원들이 아프면 어떻게 될까? 의사가 타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 항해사들이 최소한의 위생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위생 관련 자격을 취득하게 한다. 3등 항해사가 그 담당 사관이다. 3등 항해사는 선박에서 작은 병원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갑자기 작업을 하던 선원이 크게 다쳤다고 선내 병원으로 왔다. 상처 부위가 커서 다섯 바늘 정도 꿰매주어야 빨리 나을 것 같았다. 망망대해에서 진짜 병원의 의사를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담당 항해사인 나는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수술도구를 찾았다. 수술용 바늘은 반달 모양이라서 상처 부위에 집어넣어 실을 빼 올리기가 쉽게 돼 있었다. 어렵지 않게 꿰매주었고, 일주일이 지나서 실밥도 끊어주었다. 막 선박에 승선한 애송이 3등 항해사가 어떻게 수술까지 할 줄 아느냐고 칭찬이 자자했다. 모두 해양대에서 배운 결과물인 것을….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초보 수술을 한 추억이다. 마치 의사가 된 듯 으쓱한 기분을 느꼈다.

1등 항해사 시절에는 참으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선원들은 항해 중 밥을 먹어야 하고 쌀이 필요하다. 미국 서부 쌀이 좋아서 미국에 들어가면 선장은 쌀을 잔뜩 구입해, 쌀 포대를 선내 창고에 쌓아 둔다. 어느 날 사주장이 와서 벌레가 쌀 창고에 날아다닌다고 하면서 쌀 포대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니 선박에 있는 살충제를 창고의 허공에 뿌릴 것을 제안했다. 나는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보름쯤 지나서 사주장이 헐레벌떡 찾아와서는 “큰일 났다”고 한다. 밥을 지었는데 기름 냄새가 나서 먹지를 못하겠다고 한다. 아뿔싸, 보름 전에 뿌린 살충제에 포함된 기름 성분이 쌀 포대에 스며들어 기름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제일 아래 쌀 포대의 쌀은 괜찮을 것 같아서 그것으로 밥을 지었다. 그런데도 불평이 들어왔다. 선원들의 불평이 가중되었다. 밥 끼니마다 조마조마했다.

선장님에게 1등 항해사인 내가 불찰로 살충제를 뿌렸는데 그 여파로 기름 냄새가 쌀에 스며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보고했다. 영향을 받은 쌀 포대는 폐기 처분을 하고 회사에 끼친 손해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선장님이 일을 잘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쌀벌레는 사라졌지만 쌀을 못 먹게 만들고 말았다. 선장이나 부선장인 1등 항해사는 모든 것을 잘 알고 만물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회사에 사후 보고를 했다. 이런 경우에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말도록 전 선박에 ‘사고 보고’를 보내 달라고. 이렇게 선원들 간의 경험이 공유되고 바다의 지혜가 쌓이면서 유사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배#입항#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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