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은 어둠이나 다 가져라 걸음 없이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 어둠 속 풀잎이나 바람결이나 다 가져라 걸어서 닿을 수 없는 데에 가고 싶으니 유실수들 풋열매 떨어뜨리는 소리 이승의 끝자락을 적신다 (…)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낮과 밤, 빛과 어둠의 이분법을 익히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이 물리적인 현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쉽게 말해 이것은 일종의 은유다. 중세에서 빛은 신의 몫이었다. 사람들은 높은 곳의 빛을 향해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다 근대에 와서 빛의 은유는 확 바뀌었다. 요즘 시대에 빛은 지성과 이성을 의미한다. 우리는 빛이 가득한 시간대에는 대체로 멀쩡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성의 시대, 빛의 시대에 밤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밤은 바로 여기, 장석남의 시에 숨어 있다. 그것은 제가 나타나도 좋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무릇 모든 연애편지는 훤한 낮에는 쓰이지 않는다. 낯 뜨거운 미사여구는 낯이 보이지 않는 밤에 탄생하는 법이다. 속마음을 담은 문자도, 이불킥을 동반하는 카톡 메시지도 늦은 밤에 보내진다. 밤은 마치 태풍이 바다를 뒤집어 놓듯 사람의 내면을 뒤흔든다. 그때, 우리는 이성의 셈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지 못했던 길을 생각하게 하고, 갈 수 없었던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울고 싶은 이는 울기 위해 밤을 기다리고, 외롭고 싶은 이는 외롭기 위해 밤을 기다린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니까, 시인의 시를 따라 읽으며 밤길을 걷는다. 걸어서 닿을 수 없는 곳을, 이 시를 잡고서 간다. 시인은 눈에 보이는 발길을 조롱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밤의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 밤길은 밖에 없고 우리 마음속에 있다. 문밖의 길을 새로이 닦을 수 없으니, 마음의 길을 닦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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