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바비’와 ‘마이삭’에 이어 ‘하이선’까지 우리나라로 향할 가능성이 생긴 가운데 기존 법칙을 무시하는 이례적인 태풍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태풍은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에너지 불균형 해소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구형으로 된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받아들임에 있어 필연적으로 에너지 불균형이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 태풍이다. 태풍은 태양의 고도각이 높아 많은 에너지를 받아들인 적도 부근의 바다에서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태풍은 바다로부터 꾸준히 수증기를 흡수하며 세력을 유지하고, 고위도로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 지구의 저위도와 고위도의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한다.
일반적으로 태풍의 생성에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27도 이상의 고수온 해역이며, 두 번째는 대기 중층에 충분한 습기 유입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대기 하층에 와도성 흐름이라 불리는 회오리가 더해지는 것이다. 태풍 바비는 이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소가 결여된 상태에서 탄생한 돌연변이 태풍이다. 태풍 바비가 만들어진 당시 대만 동쪽 해상에는 태풍 형성의 첫 번째 조건인 30도가 넘는 고수온 해역은 존재했다. 하지만 충분한 습기를 머금은 대기 중층이나 하층의 와도성 흐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태풍 바비가 기상학계로부터 ‘자수성가형 태풍’이란 별명을 얻은 이유다.
태풍 바비는 생성 위치와 성장 주기도 이례적이다. 보통 북위 5∼10도의 적도 부근에서 만들어지던 태풍은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아 북위 15도 부근에서 주로 생성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생성된 태풍은 열흘 남짓한 기간을 이동해 우리나라에 도달하므로 이동 경로나 위력 등의 다양한 예측을 통해 충분한 대비가 가능하다. 하지만 북위 23.5도의 대만 동쪽 해역에서 만들어진 태풍 바비는 열흘 남짓한 일반적 태풍의 사이클을 절반으로 줄여 4일 만에 순식간에 우리나라를 덮쳤다. 기세 좋게 한반도를 향해 올 당시의 바비는 큰 피해를 남겼던 태풍으로 기억되는 ‘루사’와 ‘매미’보다 강한 초속 40m의 중심 풍속과 최대 순간 풍속 초속 60m를 가진 것으로 예보돼 큰 피해가 예상됐다. 하지만 실제 한반도에 도달한 바비는 다행스럽게도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먼저 다녀간 태풍 바비가 출생의 비밀을 간직했다면 태풍 마이삭은 성장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태풍은 육지에 상륙하면 해수면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는 데다 육지와의 마찰력 때문에 세력이 급격하게 약해지는데 마이삭은 이런 이론을 비웃듯 동해로 빠져나갈 때까지 세력을 유지했다. 그 바탕에는 시속 70km에 가까운 빠른 속도가 있었다.
역대 가장 긴 장마로 기록된 올해 장마에 이어진 이례적인 두 태풍 바비와 마이삭. 올여름이 그저 이례적이었던 한 해로 기록될지, 태풍의 진화나 거대한 기후 변화의 시작으로 기록될지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지구를 위해서라도, 우리를 위해서라도 태풍의 진화가 아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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