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권력 근처만 가면 不義가 正義 되는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03시 00분


‘文 결사옹위’ 결국 대통령에 害 될 것… 靑 울산시장 개입 의혹 묻힐 수 없어
권력 옹위하면 영전, 엇나가면 좌천… 비정상 일상화에 사회도 무덤덤
너무 당당하게 正義 외쳐 시민 현혹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사흘 뒤인 10일이 무슨 날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 4개월, 즉 40개월째 되는 날이다. 5년 임기의 3분의 2를 꽉 채우고 남은 3분의 1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날인 셈. 역대 대통령은 이맘때쯤 레임덕 내리막의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으나 문 대통령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아니, 취임 초보다 되레 서슬이 퍼렇다고 해야 하나. 하필 이즈음 문 대통령을 제왕으로 빗댄 ‘시무 7조’니 ‘영남만인소’ 같은 풍자 글이 화제가 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한때 ‘경청의 달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했던 문 대통령. 허나 요즘의 언행에는 거침이 없다. 최근 구설을 빚은 ‘의사 간호사 편 가르기’ 발언도 그렇다. 대통령쯤 되는 분이 일부러 의사와 간호사를 이간질하려 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다만 ‘쓰러진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 등의 사려 깊지 못한 표현들을 서슴없이 인터넷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좋게 말하면 자신감의 표현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만함의 발로(發露)다.

여론이 불리해지니까 ‘대통령이 직접 쓴 게 아니다’라고 연막을 피우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걸 보면 더 가관이다. 민주 국가의 대통령을 ‘무오류의 제왕’으로 떠받들려는 기도(企圖)야말로 왕조시대 간신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총선 압승에 코로나19 사태로 지도자에 힘이 쏠리는 분위기를 업고 문 대통령이 더욱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줘라’ ‘공권력의 엄정함을 세우겠다’는 등 사회질서를 마구 유린한 민노총에는 한번도 쓰지 않던 ‘공권력’이란 용어를 연달아 소환하더니,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대놓고 꾸짖는 듯한 태도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이야 권력자니까 권위적으로 변하는 것도, 때로 권력에 취하는 것도 일견 이해는 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측근들이, 혹은 소위 ‘문파’라는 사람들이 문재인의 털끝만 건드려도 우 하고 일어나서 결사 옹위하는 듯한 모습은 시계를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리는 행태다. 그런 시대착오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것인지, 문 대통령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알다시피 ‘문재인의 30년 친구’라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2018년 시장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개입한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이 수사팀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인사로 사실상 분해됐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묻힐까.

문 대통령 임기 중엔 어려울지 몰라도 대통령의 연루 소지가 있는, 이미 윤곽이 드러난 사건이 완전히 묻히는 일은 없다. 시간이 얼마 걸리든 간에. 그게 한국 정치다. 문 대통령의 딸과 관련된 구설 등 주변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지만, 우리 사회의 입은 그렇게 다물어지는 법이 없다. 문 대통령에게 신발을 투척한 사람을 기어코 구속시키고야 마는 등 대통령 주변에 철옹성을 쌓는 이들이야말로 결국 대통령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전 두 대통령의 실패 사례를 보라.

비단 대통령 주변뿐이 아니다. 조국 윤미향 사태와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에서 보듯, 블랙홀 주변에서 빛이 굴절되듯이 권력 근처만 가면 진실이 꺾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권력을 옹위하는 사람들은 영전하고 금배지 달고, 엇나가는 소리를 낸 사람들은 좌천되고 옷을 벗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어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도 점점 무덤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댓글조작 혐의 재판의 2심 선고가 11월에 나온다고 한다. 아무리 김 지사가 권력 실세라고 해도 대통령 선거 관련 사건의 2심 선고가 대선 3년 반 뒤에야 나오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3심까지 가면 지사 임기를 거의 다 채우는 것 아닌가. 그 와중에 한 부장검사는 이 사건 특검에 참여해 권력의 속살을 건드린 뒤 한직을 떠돌다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사회…. 그래도 이 정권 사람들은 당당하게 정의(正義)를 외친다. 너무 당당해서 지지자들, 아니 보통의 시민들까지도 현혹될 지경이다. 명백한 불의(不義)가 권력 근처만 가면 어느새 정의(正義)로 둔갑하는 이 나라, 과연 정상인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취임#40개월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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