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때문에 천당지옥 오간 두산중공업[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03시 00분


기업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정책
정부 힘 발휘에 신중치 않으면 국민 피해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두산중공업 경영진은 최근 주변에서 “주가가 이렇게 뜬다고 왜 이야기 안 해 줬나”라는 타박을 여러 차례 듣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올해 초만 해도 2500원 근처를 오르내리던 주가가 요새 1만5000원 선을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난들 알았겠나. 우리 회사 주가가 이렇게 이상하게 많이 오를 줄.”

요새 인기 있는 기술주도 아닌데 이 회사 주가가 경영진이 예측도 못 한 새 급등한 건 정부 정책 덕분이다. 요새 한참 말이 많은 ‘그린 뉴딜’의 수혜주로 급부상한 것이다.

한국형 뉴딜 사업 중 말 많고 탈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뉴딜 펀드와 별개로, 정부가 그린 뉴딜 중 하나로 신재생에너지를 키우겠다며 꼽은 내용에 풍력발전이 들어 있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풍력발전소를 지을 시공 능력이 있고, 기술력이 검증된 기자재를 납품할 수 있는 회사다. 특히 해상풍력발전 실적을 유일하게 갖고 있다.

두산은 2005년 이 시장에 뛰어들어 15년간 기술을 닦았다. 그간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이 이 시장에 들어왔다가 포기했다. 투자 기간이 너무 긴 데 비해 시장은 늦게 열렸기 때문이다. 시장이 열렸다고 기존 업체들이 다시 들어오기엔 발전기 모델을 만들어 2년 정도에 걸쳐 입증을 해야 해서 진입장벽이 있다. 태양광처럼 누구나 논밭에 집적판 몇 개 설치한다고 사업자인 척할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를 일으켜 보자는 뉴딜 사업에 해외 기업을 쓸 수도 없다. 정부 구상으론 2030년까지 서남해에 12기가와트까지 해상풍력발전소를 짓겠다는 건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60조∼70조 원의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구상이 현실화되는 데는 난관이 많을 것이다. 어디에 지을지 장소를 물색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민의 반대도 클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그린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정권을 뛰어넘는 명제라 서서히, 프로젝트별로 조금씩 진행은 될 것이다. 게다가 경영난이 가중되던 두산중공업이 골프장, 건물, 계열사 등을 팔아 채권단 빚을 갚(으려 하)고, 유상증자로 부채 비율을 줄이는 등 경영 정상화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내용이 급등한 주가에 집약돼 있다.

정부의 정책이 두산중공업을 살렸다는 점은 2017년부터 급작스레 진행된 탈원전 정책으로 두산의 경영난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물론 그 전이라고 두산중공업이 빼어나게 좋은 회사는 아니었다. 두산그룹의 중간지주회사 역할을 했기 때문에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같은 회사들의 실적이 나빠지면 일정 부분 이를 떠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변화하는 글로벌 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응이 그리 빠르지 않았던 면모도 있었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은 변화의 바람을 감지하고 풍력, 가스터빈 등의 사업을 서서히 장착하던 중이었다.

경영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측 가능성이다. 정부 정책과 관련 있는 에너지 기업들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향후 20년을 예상하며 5년마다 수립하는 최상위 국가에너지전략이 하루아침에 흔들릴 것이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탈원전이라는 방향성이 옳다 하더라도 정책의 하단에서 목숨 걸고 애쓰고 있는 산업계가 대비할 시간을 줬어야 했다.

정부의 정책은 멀쩡한 기업을 쓰러뜨리기도, 죽어가던 기업을 살리기도 한다. 이번 뉴딜 정책으로 보여준 거지만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5년간 170조 원을 기업에 투자하게 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처럼 힘이 세다. 그러니 휘두를 땐 그만큼 신중하고 정치해야 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두산중공업#경영진#천당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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