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경쟁했던 18대 대선일인 2012년 12월 19일. 문재인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였던 A 씨는 당시 후보 비서실장이었던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방에 들어갔다. A 씨는 “노 실장이 뭔가 열심히 하고 있기에 뭐 하나 봤더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더라. (문 대통령이) 당선될 거라고 확신을 한 것이다.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 그렇게 나이브(naive·순진하다)하냐. 지금 여당(당시 새누리당)은 사람들 동원해서 경로당에서 유권자를 실어 나른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러고 있어도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사석에서 A 씨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5년 전. 당선 이후를 준비하는 것도 노 실장의 역할이었겠지만 A 씨는 당시 대선 캠프의 안이했던 막판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취재수첩에 담아 놓았던 이 일화가 생각난 것은 최근 청와대를 향해 ‘안이하다’, ‘순진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권 내에선 최근 의료파업 과정에서 나타난 청와대의 안이한 판단을 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출범 초부터 준비해 온 의대 정원 확대는 폭발력이 큰 이슈”라며 “추진 과정에서 청와대 관계자에게 ‘의료계와 소통은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일부 반발은 있겠지만 돌파가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자신만만했던 태도는 보름 넘게 이어진 의료 파업 사태로 돌아왔다.
대한의사협회와 당정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청와대의 태도를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속에 의료계가 파업을 시작하자 청와대는 연일 강경 메시지를 발산하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의협과 협상을 하던 시각 문 대통령이 “법 집행을 통해 강력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 하지만 결국 당정이 공공의대 정책 원점 재검토로 한발 물러나면서 실익 없는 싸움에 청와대만 목소리를 높인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문 대통령의 ‘간호사 격려 메시지’는 청와대의 안이해진 정무감각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간호사를 격려하려 했던 문 대통령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없다. 하지만 청와대가 전하려던 대통령의 진심은 “(옥외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벗지 못한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표현 속에 뒤틀려져 ‘갈라치기’ 논란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격려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보면 될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메시지가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를 잘못 읽은 이들이 문제라는 태도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도 두 사안의 공통점이다. 평소 2000∼4000건의 댓글이 달리던 문 대통령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와 달리 간호사 격려 메시지엔 4만20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 내에선 ‘대통령이 낸 메시지가 아니다’라는 회피로 또 다른 설화를 일으켰다. 의대 정원 확충도 마찬가지다. 여권 관계자는 “결국 강경론을 내세웠던 청와대는 쏙 빠진 것 아니냐”며 “온 동네에 다 불 질러놓고 청와대는 꿀 먹은 벙어리다. 노 실장과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여권에선 불필요한 논란을 키우는 청와대의 안이한 태도를 두고 결국 청와대 2인자인 노 실장을 거론한다. 이는 대통령비서실장의 숙명 같은 일이기도 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바깥에서 나오는 불편한 목소리라도 귀담아듣고 내부에 전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라며 “청와대 내부에서 자꾸만 싸우려는 메시지가 힘을 얻는 건 이런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노 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금은 문 대통령의 귀와 입 역할을 하는 노 실장이 안이한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정이 계속되면 국민들은 노 실장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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