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의 임대차 계약이 곧 종료돼 부동산을 보러 다녔다. 아내와 생후 200일이 된 딸과 함께 살 집이기에 이것저것 꼼꼼하게 살폈다. 아스팔트 바닥에 올린 콘크리트 아파트, 성냥갑처럼 켜켜이 쌓인 층 중에 단 한 채만 몇 년 빌릴 뿐인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 돈으로 시멘트를 사면 아파트 한 동 정도는 너끈히 지을 것 같았다.
약간의 무력감이 들던 차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봤다. 글쓴이는 월세로 살고 있지만 주말마다 자기 집이 생긴다고 했다. 심지어 그 집은 수려한 풍경을 골라가며 선택할 수 있고,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마당까지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살펴보니, 글쓴이는 취미로 캠핑을 하고 있었다. 글쓴이가 인터넷 카페에 게시한 이전 글을 읽어봤다. 행복한 아이들의 웃음, 자연과 어우러진 행복한 모습이 가득했다.
구미가 당겨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캠핑을 주제로 한 인터넷 카페가 많았다. 하루에 올라오는 새로운 관련 글이 수백 개일 정도였다. 올해 들어 캠핑을 취미로 하는 ‘캠핑족’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점, 도넛 가게에서는 캠핑 의자나 수납 기능이 있는 테이블을 판촉 사은품으로 주고, 4∼5월에는 타프(햇빛이나 비를 막기 위해 텐트 위에 둘러치는 천막의 일종)가 동이 나서 중고품이 웃돈에 거래되기도 했다.
나는 텐트를 하나 사서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올해 첫 캠핑을 했던 여름은 코로나19 전파가 잠시 주춤했던 때였다. 강원 양양군에 있는 해수욕장 근처에서 처음으로 캠핑을 했다. 바다가 보였고, 바닷바람이 불었으며, 파도 소리가 계속 들렸다. 무엇보다 몇 시간 땀을 뻘뻘 흘려 보금자리를 만들어냈다는 성취감이 들어 좋았다. 알루미늄 폴대와 천으로 얼기설기 만들었지만 어쨌든 이건 내 힘으로 만든 내 집이었다. 그 보금자리에서 아내와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고, 화로에서 활활 타는 모닥불을 바라봤으며, 컴컴한 텐트 안에 누워 아내와 두런두런 긴 이야기를 나눴다. 낭만적이고 행복했다.
부동산은 인간의 주거에 필요한 필수재이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 대부분이 도심에 몰려 생활하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후자의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햇빛이 잘 든다거나 포근한 느낌이 든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면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슨 동, 평당 얼마, 어디 지하철의 역세권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면 어떤 집인지 대번에 이해되지 않는가.
나는 아마 캠핑이 아니었다면 집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집은 일에서 벗어나 인생의 알짜배기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쌓는 장소다. 유독 부동산에 관한 뉴스가 많은 한 해지만 그렇게 재산으로 언급되는 집 말고, 집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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