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4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마련하는 2차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중 8900억 원을 떼어내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신비 명목으로 2만 원씩 나눠주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의 비대면 활동이 많아져 늘어난 휴대전화 요금을 메워준다는 명분이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여당은 그제 17∼34세 및 50세 이상 내국인에게 2만 원씩 6200억 원의 통신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대상에서 배제된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자 하루 만에 ‘13세 이상 전 국민 일괄지급’으로 확대해 청와대의 재가를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통신비 지원 대상자와 필요 예산은 4454만5000여 명, 8900억 원으로 44%씩 늘어난다.
재난지원금 ‘보편지급’을 요구하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7조 원대 4차 추경 중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에게 5조 원을 선별 지원하고 나머지 2조 원 이상을 통신비, 장기 미취업 청년 지원,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 아동돌봄쿠폰으로 나눠줘 보편성을 보완한다는 발상이다. 불과 며칠 전 이 대표가 “재난의 고통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며 밝힌 선별지급 원칙과 앞뒤가 도무지 맞지 않는다.
2차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에 대해선 여야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론이 없다. 그러나 거듭되는 추경으로 국가채무가 급증해 국가 신인도 하락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회원국에 비해 한국 재정이 건전하다는 점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마저 “현실적으로 재정상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전 국민에게 2만 원씩 나눠주는 건 하락한 지지율을 의식한 포퓰리즘이란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피해가 큰 자영업자·소상공인과 미취업 청년을 우선 지원하는 건 상식을 갖춘 국민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결정이었다. 모처럼 여권이 합리적 선택을 하나 했더니 며칠 만에 정치 논리를 좇아 세금을 제 돈처럼 쓰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일각의 불만을 잠재우겠다며 전액 빚을 내 만든 예산을 잘게 쪼개 온 국민에게 살포하는 건 책임감 있는 정부와 여당이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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