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안 등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당정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안정 뒤 원점 재논의’에 합의하면서 봉합됐다. 아직 전국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하고 있어서 분쟁의 불씨는 남아 있다. 다만 의사면허는 운전면허 같은 일종의 자격증 시험이기 때문에 해결방법은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의료문제에 대한 단기적 해법보다 의료정책의 장기적 해법을 찾아서 접근해야 된다는 것, 또 의료문제는 정치적으로 풀 게 아니라 당사자 대화와 협의를 통해 진정성 있게 풀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20년 전 필자가 당시 전공의로서 의약분업 반대 파업을 할 때에도 정치적 해법이 동원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의사 약사 환자가 모두 피해를 봤다. 문전약국만 살아남는가 하면 병원의 인테리어를 대신하고 입점하는 약국도 있다. 의약분업도 시대와 현실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공의들이 20년 만에 다시 밖으로 뛰쳐나온 건 무엇 때문일까? 전공의협의회에서 활동한 한 전공의는 “저희는 월급 올려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근무시간 줄여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의료제도가 시간-비용 대비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할 뿐이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이번 의사 수 확대 결정과 첩약 지원이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에서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공공의료의 빈 공간을 메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공공병원이라고 하면 돈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가는 병원으로 여기고 있는데 의사 수를 늘린다고 병원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기존 공공병원에 시설 투자, 인프라 투자를 통해 오히려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은 아닐까?
전공의들은 말기 폐암 환자의 면역항암제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현재 의료시스템에서 생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생리통, 안면신경마비, 뇌중풍(뇌졸중)후유증 등의 첩약지원을 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에서 면역항암제는 대부분 비보험이다. 미국과 영국 일본 캐나다 등 해외 52개국에서 말기 폐암 1차 치료제로 보험급여를 해주는 면역항암제가 유독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 환자는 연간 1억 원이 넘는 약제비를 지출하면서 ‘메디컬 푸어’로 전락하고 있다. 폐암 환자 3명 중 1명은 사망하거나 치료를 포기한다. 이에 필요한 예산은 1000억∼1500억 원 정도다.
이번 집단휴진(파업) 때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까지 외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전공의들이 병원을 지켰다. 서울대병원 전공의들은 매일 50명씩 당번을 정해서 코로나19 관련 선별진료소, 중환자실, 생활치료센터 등에서 자발적 진료를 했다. 다른 한 병원의 전공의들은 공개적인 출근 시 정부와의 협상력이 떨어질 것을 걱정해 간호사복을 입고 몰래 일하기도 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서남대 의대 폐교를 대신할 공공의대 설립을 위해 부지 확보와 병원 신축, 인력 확보, 의료장비 구입 등에 수천억 원의 국민 세금을 새로 쓴다는 방안을 재고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있는 공공병원 중에서 전국적으로 균형 있게 운영 중인 곳을 잘 활용한다면 수천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
공공병원 중에 하나인 중앙보훈병원의 허재택 원장은 “전국에 보훈병원이 있고 교육시설과 의료진이 잘 갖춰져 있어 막대한 추가 예산 투입 없이도 당장 공공의대를 만들 수 있다”며 “의사들이 거의 지원하지 않는 경찰 군인 등의 특수공공의료 분야부터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공의대 설립이 추진돼도 눈치보기와 지역 이기주의, 정치적인 판단에 의존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전체적으로 파악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대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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