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잊지 않는 게 소통의 출발점이다[동아 시론/우지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2일 03시 00분


靑국민청원 3년, ‘공론의 장’ 역할
민주주의 보완하는 순기능 있지만
‘국민 소리 잘 듣지 않는다’는 반응
제도 안주 말고 실질적 소통 해야

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청와대 국민청원이 도입된 지 3년이 지났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지향한다는 정부의 목표는 실제 얼마나 달성된 것일까. 국민들의 폭발적 참여를 이끌어낸 성과가 있지만, 답변이 구체적이지 못하다거나 제도적 해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는 등 실효성에 대한 비판도 많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작년에 진행한 설문 연구 결과에도 이런 상황이 드러난다. 청원 답변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반응과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일이 없다는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청원 답변에 불만족해하는 응답자들도 막상 청원 참여 동기는 ‘관련 법제도를 바꾸고 싶어서’보다 ‘사안에 대한 분노를 느껴서’,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또한 청원 후 느끼는 감정으로는 ‘시민으로서 정책 과정에 참여했다는 뿌듯함’과 ‘사안에 대한 분노나 절망감을 표출했다는 시원함’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한 기대감’보다 높았다. 국민청원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공론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청원의 의미는 국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젠다가 사회의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한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공론장 역할을 수행하는 가장 권위 있는 제도는 언론이다. 언론은 국민의 삶에 중요한 문제들을 반영하지만 때로는 엇박자를 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언론에 자신의 생각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직접 참여를 위한 대안을 찾게 된다. 최근 안전·환경, 인권·성평등, 아동, 동물 등 상대적으로 기존 제도나 언론에서 덜 다루어진 문제들이 국민청원을 통해 소개되고 장기적으로는 제도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적 의제 설정의 기능을 국민청원이 일부 담당하는 것이다. 국민의 참여가 아이러니하게도 기성 정치제도 및 언론에 대한 불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학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성 제도에 대한 불신은 그 자체로서 원인과 해결방안이 필요한 문제지만, 국민청원이 공론장을 통한 민주주의 작동기제를 보완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이렇게 국민청원의 의미를 민주주의라는 큰 틀에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국민청원이 소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청와대 홍보실을 국민소통실로 개편하고, 홍보수석 대신 국민소통수석을 임명했다. 홍보가 아니라 소통을 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소통을 중요시하는 정부가 곧 소통을 잘하는 정부일까? 소통과 홍보의 차이는 무엇일까? 홍보란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공중관계 활동이다. 쌍방향 홍보 모델로서, 정부가 이미 정한 방향으로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국민의 의견을 듣는 ‘설득’ 모델과, 국민의 의견을 듣고 이를 실제로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상호이해’ 모델이 있다. 이 중 가장 첨단적인 쌍방향 홍보 모델이라고 평가되는 ‘상호이해’ 모델을 제도화한 것이 바로 현 정부가 채택한 국민청원제도와 공론조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부들에 비해 현 정부가 국민과 더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은 다르다. 언어, 소리, 몸짓 등을 통해 사람들 간에 서로 생각과 느낌 등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의미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 반면 소통의 정의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즉 과정뿐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다. 정부 출범 당시 국민들이 가졌던 기대와 희망은 다양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 뜻과 정부의 뜻이 서로 막히지 않고 잘 통하고 있는가? 정의로운 사회, 권력기관 개혁, 효과적인 경제 정책, 첨단기술 정책 및 혁신 등 여러 분야에서 국민들이 정부에 기대했던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지지자 여부를 떠나 정부가 정한 방향으로 국민들을 몰아가려 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통이라는 것이 단지 국민의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국민의 의견을 듣는 한두 개의 제도화된 창구를 만든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단순하고도 쉬운 일이겠는가. 정부가 진정 소통을 통한 국정운영을 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제도의 운영에 안주하기보다는 국민과 뜻이 통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초심으로 돌아가 촛불 민심으로 들어선 정부로서 당시 시민들의 열망, 약식으로 치른 취임 연설의 마음, 광화문 대통령이라는 약속을 잊지 않는 것이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청와대 국민청원#국민 소통#문재인 대통령#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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