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모처럼 온 가족이 TV 앞에 모였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아빠와 거리 두기가 심해진 10대 중반 두 딸까지 명당자리를 다퉜다. 10년 만에 국내에 복귀한 배구 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이 등장한 컵 대회 결승 생중계 덕분이다.
왕성한 방송, 유튜브 활동으로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리는 김연경은 팀을 결승까지 이끈 뒤 GS칼텍스를 만났다. 4경기에서 한 세트도 잃지 않아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단 한 세트도 따지 못한 흥국생명의 완패였다. GS칼텍스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상대 공격 루트를 봉쇄했다. 4경기에서 47.4%였던 김연경의 공격성공률은 28.6%로 떨어졌다. 공격점유율이 25.6%에서 33.9%로 늘어났음에도. 데이터 배구 전문가인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GS칼텍스는 장신 러츠(206cm)가 김연경(192cm)을 막도록 라인업을 바꾼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세터 출신답게 흥국생명 세터의 볼 배급도 언급했다. “평소 이다영은 라이트 공격수를 향하는 토스가 일정하지 않다. 그런데도 다급한 나머지 믿는 선수(김연경)에게만 볼을 집중하다 보니 성공률이 더 떨어졌다. 나중엔 김연경이 그만 주라고 사인을 보내더라.”
기대가 컸던 컴백무대에서 마침표를 못 찍은 김연경이 넷플릭스 추천 1순위로 꼽은 작품이 있다. 마이클 조던과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의 성공 신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다. “조던이 구단, 선수 간 불화 등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고 우승을 이루기까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몰입했다.”
김연경의 추천사처럼 이 작품은 조던의 강력한 리더십, 갈등과 치유 등 감춰진 내면을 끌어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6번 우승(3연패 2회)을 차지한 왕조의 황제로 군림한 조던은 모든 경기를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뛴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서란다.
때론 폭군이었다. 강한 훈련을 신봉하면서 못 따라오는 동료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가장 잘 알고 있던 그는 그 기준에 미흡하면 폭언도 퍼부었다. 선수단이 전세기로 이동할 때 승무원에게 후배 호러스 그랜트는 밥도 주지 말라고 했다. 플레이가 형편없었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컨디션 관리를 강조한 것이었다. 스티브 커는 연습경기 후 조던의 주먹을 맞고 눈에 멍이 들었다. 거친 몸싸움 끝에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둘 사이는 끈끈해졌다.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던 스코티 피펜이 1998년 파이널 6차전에서 허리 통증으로 거동조차 불편해졌지만 “코트에서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보라”며 투지를 주문했다.
조던은 누구보다 많은 땀으로 솔선수범했기에 정나미 떨어질 법한 행동도 쓴 약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공통의 목표만 있었을 뿐 내 편, 네 편 가르기는 없었다. “내가 하지 않은 걸 남에게 시키지 않았다. 내 열정은 전염성이 있다. 늘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프로야구 두산은 ‘어우’ 대명사로 불린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라 3번 우승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우리에겐 좋을 게 없는 표현이다. 부담, 방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선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지피지기와 원 팀 정신으로 흐름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에 오르고, 지키는 일은 결코 슈퍼스타(리더) 혼자서 해낼 수 없다. “재주로 몇 게임 이길 수 있지만 우승은 팀워크와 통찰력이 있어야만 한다.” 조던이 남긴 이 명언이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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