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이전에 비해 크게 오른 지구의 평균 기온을 낮추지 못한다면 인류 생존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 하지만 쉬운 해법은 아니다. 화석연료는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 현대인의 일상생활 행태가 종종 ‘탄소중독’에 비유될 정도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자발적으로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쩔 수 없이 강제력이 동원돼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대법원은 환경단체 위르헨다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까지 1990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 이상을 감축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올해 7월 아일랜드 대법원도 시민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2050년까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이행 계획을 제시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이번 달에는 포르투갈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6명이 유럽연합을 포함한 33개국을 유럽인권재판소에 고소했다. 이들은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아 자신들과 가족의 생명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국가를 대상으로 한 시민사회의 기후변화 소송이 확산되고 있다.
국가 단위를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법적 규제는 유엔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유엔은 국가 중심의 국제질서 틀 안에서 작동하므로 국가 주권을 넘어서는 강제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파리기후협약은 유엔 차원의 법적 규제를 지향하지만 각국이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스스로 이행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을 실행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유럽과 한국 사회를 경험한 한 인사가 법을 바라보는 양 문화권의 차이에 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유럽 사회에서 법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으로 여기는 반면, 한국 사회에서는 법을 달성해야 할 ‘최고의 목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 사회에서는 법을 어기면 엄청난 비난을 받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법을 어겨도 법 위반자가 상대적으로 죄책감을 작게 갖는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편견이라고 대응했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었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무대책 상태에서의 배출량(BAU)보다 37% 줄이겠다는 NDC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했지만 이는 달성해야 할 도전적 목표이다. 최근 온실가스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이 목표는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유럽의 법 전통에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금언이 있다. NDC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수단이 유엔에 없을지라도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지키는 것이 법 정신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지켜라(Fiat justitia ruat caelum)’라는 금언도 있다. 최근 기후변화 때문에 하늘이 무사하지 못하다.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시스템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도 국제 사회에 약속한 법은 꼭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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