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말 미국 주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관련 역내 7개국 외교차관 간 전화협의’가 처음 열렸다. 명칭만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는 와중에 으레 열리는 다자회의로 넘겨짚기 쉬울 정도로 무미건조했다. 하지만 그 파장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이 협의체의 출범과 함께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구성돼 있는 지역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의 확대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미국, 중국 견제 위해 한국을 ‘쿼드 플러스’ 참여국 지목
기존 쿼드 4개국에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가 추가로 참여한 ‘7개국 협의’는 이달 11일까지 모두 12차례나 열렸다. 한국 외교부가 “미국의 제의로 (참여를) 조율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미국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은 3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9주간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회의를 열 정도로 운영에 공을 들였다. 이후 미국이 ‘수시 개최’를 선언한 이후에도 세 번이나 더 모인 것이다.
협의 내용도 ‘지속 가능한 글로벌 공급망 유지’를 비롯해 경제 분야가 포함되는 등 이미 출범 초기부터 해외에서는 이 7개국 협의의 성격이 코로나 대응에서 언제든 안보 등 다양한 범위로 확대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제프 스미스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4월 “(7개국 협의는) 쿼드에 작은 움직임처럼 보일 수 있지만 향후 지역 안보에 큰 파급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쿼드에 참여 중인 호주의 싱크탱크 ‘퍼스 미-아시아센터’도 같은 달 “‘쿼드 플러스(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모인 것은 (쿼드에) 새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들이 (참여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속도로 (쿼드를) 확대하고자 하기 때문일 수 있다”며 “중국도 코로나19 대응 명목의 협력은 반대할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차단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며 다양한 종류의 동맹 및 파트너 간 연대를 구상하고 실제로 동맹국들에 제안하고 있다. 미국 중심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와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클린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이 포함된 7개국 협의체가 안보를 논의하는 ‘쿼드 플러스’로 공식화되는 ‘동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구상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동북아의 시선은 유력한 ‘쿼드 플러스’ 참여 후보국으로 지목되는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 정부는 아직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참여 제의가 온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중국 견제 심리는 이미 공화당과 민주당의 당파조차 뛰어넘고 있다. 따라서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관계없이 대중국 압박 전선에 한국을 참여시키려는 논의와 한국에 대한 압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정부가 ‘쿼드 플러스’ 참여 가능성을 배제하기보다 참여의 실리를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쿼드 플러스 부상에 中 눈치 보는 정부 당황
미국은 쿼드 플러스라는 실험적인 협의체를 통해 ‘중국 견제’에 더 많은 동맹국들이 참여하는 포석을 까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달 31일 “쿼드는 배타적이지 않다. 다른 나라들을 포함시킬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7개국 협의를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건 부장관은 “우리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줄 나라들의 자연스러운 조합을 생각했을 때 분명히 주목해야 하는 파트너들이 (3∼9월) 협의체를 통해 매주 만났던 7개국”이라고도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달 1일과 2일 연달아 한국을 호주 일본 등과 함께 ‘중국에 대응하는 나라’로 소개하기도 했다.
외교 당국은 미국의 이런 적극성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비건 부장관과 만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12일 귀국 후 기자들과 만나 “한미관계는 동맹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한국은) 여전히 중국과 근접해 있고 전략적으로나 경제 사회적으로 가까운 관계라는 우리 입장을 설명했다”며 “‘(미국이) 선택을 강요했다’ 이런 식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워싱턴 특파원들을 만나서는 “(목표가 미중 간) 등거리는 아니다”라며 “동맹이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최 차관의 방미 과정에서 미국이 쿼드 플러스에 한국의 참여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오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왜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푼 최근 한미 미사일협정 개정 과정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을 한국 정부에 자세히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 대중 견제 압박 전선에 참여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중요하다’는 한국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면서 미국의 이런 압박에 모호한 태도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는 당장 ‘한중 관계 복원’을 목표로 연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차원의 ‘반중 전선’ 참여를 고민하거나 검토한다는 시그널을 발신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게 외교 당국의 속내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는 최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이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대고 있는 상황에서 두 요소는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쿼드도 ‘재해 대응’서 ‘안보’로 성격 변화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의 ‘쿼드 플러스’ 참여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미국이 반중 전선을 꾸리며 연대할 국가들을 찾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쿼드 플러스’를 통해 반중 전선을 구체화할지 확정된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은 한미일 3국에 호주와 인도까지 연계시키는 것이 (반중 전선의) 바람직한 전략적 밑그림이라고 보고 있다”면서도 “아직 완전히 확정된 전략은 아니며, 지금은 전략적 연대에 들어갈 멤버를 타진해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견제 성격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 역시 처음에는 2004년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초대형 쓰나미 복구 논의를 위한 임시 협의체였다.
당시 미-일-호주-인도 4개국은 재해 복구 및 관련 인도적 지원 사업 등을 위한 이른바 ‘쓰나미 코어 그룹’이라는 조직을 구성했다. 이후 일본 등의 주도로 2007년부터 안보 협의체 형태로 발전했다. 그해 5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4개국 차관보급 인사들이 비공식 협의를 가진 데 이어 같은 해 9월 4개국이 공동으로 인도양 벵골만에서 연합군사훈련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이듬해인 2008년 쿼드 논의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중국의 공세적 부상과 이를 문제 삼은 미국 일본의 주도로 9년 만인 2017년 11월부터 다시 살아났다.
따라서 7개국 협의도 지금은 코로나19 대처에 논의를 집중하고 있지만 쿼드와 마찬가지로 안보 협의체인 ‘쿼드 플러스’로 성격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 美 대선, 누가 이기든 ‘반중’
이 때문에 정부가 ‘미국은 동맹에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식의 설명으로 실제 존재하는 미국의 반중 전선 참여 압박을 덮을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관측도 어디까지나 문제의 범위를 ‘쿼드 정식 확대’로 엄격히 제한했을 때나 유효하다는 것이다. 중국 견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미국의 요구로 범위를 확대하면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쿼드를 ‘아시아판 나토’로 확대시키느냐가 당면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이를 실제로 조직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모종의 연대를 통해 반중 연대를 구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설사 민주당으로 행정부 교체가 일어난다고 해도 이 문제를 놓고 한국에 가해지는 압박 수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많다. 이 때문에 ‘정부가 숨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 연구위원은 “본질적으로 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중 연대’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중국의 굴기를 억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동맹 네트워크를 이용한 중국 위협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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