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환자가 나오고 열흘쯤 지난 1월 말. 한 지방자치단체가 채용공고를 냈다. 1명을 뽑는데 연봉 ‘6100만 원(하한액)’, 근무 기간은 2년이었다. 업무 실적에 따라 계약 기간을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였다. 지원자는 없었다. ‘유능한 인재의 많은 응모를 바란다’며 2월에 같은 공고를 다시 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4월에 2번, 5월과 6월에도 한 번씩 냈다. 역시 지원자는 없었다. 이 자치단체는 역학조사관을 뽑으려 했다. 지원 자격으로 의사면허증과 면허 취득 후 관련 분야에서 2년 이상 연구나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역학조사에 부하가 많이 걸리자 정부는 조사관을 늘리기로 했다. 감염병예방법을 고쳐 질병관리청 소속 역학조사관 정원을 100명 이상으로 늘렸다. 그 전엔 30명이었다. 인구 10만 명 이상인 시군구는 이달 5일부터 반드시 1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두도록 했다. 광역지자체는 2명 이상의 조사관을 둬야 하고 이 중 1명 이상은 반드시 의사여야 한다.
조사관을 늘려 역학 대응 역량을 강화하려는데 여의치가 않다. 경기도에서 인구 10만 명을 넘어 역학조사관을 둬야 하는 시군은 25곳이다. 이 중 의사나 간호사를 조사관으로 새로 채용한 곳은 11곳이다. 나머지는 보건소 직원이나 군 복무 대신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로 자리를 채웠다. 역학조사를 관련 분야 경험이 있는 의사가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역량이나 전문성에선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역학조사관 대부분은 임기제(계약직) 공무원이다. 연봉 수준까지 감안하면 의사들의 지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연봉 60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면허증을 가진 사람 기준에서 보면 많다고도 할 수 없다. 상급종합병원 전임의들이 연봉 9000만 원가량을 받는다.
그런데 의사들이 역학조사관 자리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건 꼭 보수가 적어서만은 아니라고 한다. 1월에 처음 채용공고를 낼 때 6000만 원대 연봉을 제시했던 자치단체도 6월엔 1억 원까지 연봉을 올렸었다. 정년이 보장되는 연구관이나 연구사 신분의 역학조사관으로 임용돼 20년 이상을 근무해도 일반 공무원의 지시와 감독 아래 일해야 하는 자리라 의사들이 매력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2, 3년 경력 쌓고 대학으로 갈 생각은 할지 몰라도 베테랑 조사관이 되겠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 해당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과장급 이상 대부분이 역학조사관(EIS) 출신이다. 이런 자리는 EIS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으면 맡기 힘들다고 한다. 미국이 한다고 다 따라 할 건 아니지만 역학조사관을 일반 공무원들의 승진 체계 안으로 들이는 걸 고민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승진할 수 있고 관리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오래 일하는 역학조사관도 나온다. 그래야 국가적인 역학 대응 역량도 키울 수 있다.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함을 사명으로 하겠습니다.’ 역학조사관 선서문 1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확진자, 접촉자에게 멱살까지 잡혀 가며 일하는 요즘 같은 때엔 특히 사명감만으로 일해 주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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