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형제의 죽음[이은화의 미술시간]〈12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7일 03시 00분


테오도어 힐데브란트, 에드워드
4세 아이들의 살해, 1835년
테오도어 힐데브란트, 에드워드 4세 아이들의 살해, 1835년
깊은 밤 어린 두 형제가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 있다. 형도 어려 보이지만 엄마처럼 동생을 품에 안고 있다. 옆에는 읽다가 뒤집어 놓은 성경책과 붉은 묵주가 놓여 있다. 잠들기 전까지 성서를 읽고 기도를 했나 보다. 건장한 사내 둘이 이를 지켜보고 있고, 그중 한 명은 손에 커다란 베개를 들었다. 대체 이 아이들은 누구고,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테오도어 힐데브란트는 문학과 역사 주제의 그림에 탁월했던 독일 화가다. 그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잠든 아이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4세의 두 아들이다. 장남 에드워드 5세는 아버지가 급사하면서 왕위에 올랐으나 왕관도 써보지 못한 채 동생 리처드와 함께 런던탑에 갇히고 만다. 형제를 탑에 가두고 왕위를 찬탈한 자는 다름 아닌 이들의 삼촌 리처드 3세였다. 형제는 탑에 갇힌 지 오래되지 않아 삼촌이 보낸 자객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힐데브란트는 아이들이 살해당하기 직전의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예술적 상상력을 가미해 장면은 실제보다 더 극적으로 연출했다. 당시 형제는 각각 12세, 9세였지만 훨씬 어리게 표현해 동정심을 더 크게 유발한다. 성서와 묵주는 두 아이가 죽음의 공포와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매일 밤을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도 에드워드 5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앙심과 도덕성, 학문적 소양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천사 같은 아이들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을까. 자객들은 살짝 주저하는 표정을 짓지만 왕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을 터다.

어린 조카들을 희생시키고 왕이 된 리처드 3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시민과 귀족들의 지지를 얻었으나 즉위 후 시작된 반란과 아군의 배신으로 전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권좌에 오른 지 2년 만이었다. 하늘 같은 권세도 도덕적 결함이 있으면 결국 지지 세력을 잃고 무너지고 만다는 걸 보여준 왕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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