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윤미향·추미애 잘라냈다면 ‘사태’ 아닌 사건으로 그쳤을 것
진보가치 관점 아닌 기득권 좌파집단 논리에 檢·軍 망가지고 與 추태 경쟁 자초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진영의 수장(首長)’이 되어선 안 된다고 당부해 왔다. 좌우 어느 한쪽 진영만의 리더가 아닌 ‘국민 전체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 필자는 문 대통령에게 “제발 진보 진영의 수장이라도 되어 달라”고 촉구하고 싶다. 통합은 차치하고, 진보의 가치를 위한 선택이라도 해달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진정 진보의 미래와 가치를 염두에 뒀다면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에서 드러난 사이비 진보 행태, 기득권 좌파의 행태를 과감히 척결했어야 했다.
조직의 리더는 아무리 친하거나 아끼는 인물이어도 조직에 심각한 폐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쳐낸다. 꼬리를 잘라 위기를 벗어나는 도마뱀처럼 조직 전체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정반대 길을 택해왔다. 그의 침묵은 ‘결사항전’ 메시지로 해석돼 문빠를 필두로 여당, 친여좌파언론들이 총궐기해 옹성전을 편다. 그러다 보니 ‘안중근’ 운운 같은 집단적 이성마비 상태까지 펼쳐지는 것이다.
윤미향 사태, 추미애 사태는 사실 ‘사태’가 아니라 사건으로 끝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올봄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후 윤미향을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직에서 사퇴시켰다면 수사 속보 정도만 나오다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추 장관 아들 사건도 대통령이 초기에 ‘제기된 의혹 중 일부라도 사실이라면 이 정부 가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입장을 정리했다면, 그래서 검찰이 신속히 수사해서 결론을 냈다면 이렇게 국가기관들이 망가지고, 여당 의원들이 발가벗고 춤추는 듯한 ‘집단 망언 페스티벌’로 발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추미애, 윤미향을 자르지 않는다. 조국 때도 그랬다. 작은 조직의 팀장만 되어도 선명히 눈에 보일 해법을 왜 외면하는 걸까.
그것은 대통령이 진보 진영 전체의 관점이 아니라, 좌파 내에서도 변종으로 진화한 소수 집단의 논리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수십 년간 정치권, 시민단체, 재야단체 등에 흩어져 생존하며 공생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 개인적 친분은 물론이고 권력에서 파생되는 온갖 먹거리를 중심으로 비즈니스 관계로도 끈끈하게 얽혀 있다.
패거리즘에 철저한 그들은 소속 멤버 중 누군가의 추문이 터지면, 내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해 그들만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판단의 잣대가 정의 명분 국민정서 도덕이고,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판단의 잣대가 실정법으로 바뀐다.
그 결과 매번 대통령에겐 ‘실정법 위반 여부는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 ‘개혁 저항세력의 음모’식으로 입력됐을 것이다.
특히 추미애 사태에서 밀릴 경우 추 장관이 훗날 직권남용으로 처벌될 위험성을 무릅쓰고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구축해놓은 ‘애완검(檢) 시스템’이 무너져 검찰의 권력비리 수사가 다시 봇물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특권 세력 감싸기는 국가 시스템을 도미노처럼 망가뜨린다.
민주화 이래 군과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이 지금처럼 훼손된 적이 있었을까. 군의 정치적 독립은 군부쿠데타 위험이 사라졌다고 해서 완결된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아온 군의 정치적 중립은 정경두 같은 졸장들로 인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다. 저런 장관과 지휘부를 장교와 병사들이 어떻게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겠는가.
검찰 국방부에 이어 국민권익위까지 휘청대고 의원들의 궤변 릴레이까지 겹치니 쥐 한 마리 때문에 법석을 떨다 온 집안이 다 부서지는 3류 코미디 영화 장면이 연상된다.
그럼에도 궤변 경쟁은 이어질 것이다. 편가르기 정책의 결과 정치와 선거가 ‘부족전쟁’처럼 변질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망언을 해도 자기 부족이면 무조건 찍어주고, 아무리 올바른 말을 해도 자기 부족에 해가 된다고 여겨지면 좌표를 찍는다. 상식을 가진 이들의 평판이 아니라 부족전투 때 누가 앞장섰느냐에 따라 당내 위치와 공천이 결정되니 돌격대장들이 속출하며 궤변 신기록을 경신하는 것이다.
개혁의 가치도 훼손되고 있다. 사적 목적으로 ‘개혁’을 하도 우려먹은 탓이다. 검찰의 비대한 권력은 반드시 견제가 필요한 과제인데도 조국 추미애 등이 악용하는 바람에 퇴색돼 버렸다. 공공의료개혁도 시민단체 특혜라는 사욕을 끼워넣으려다 명분과 가치를 훼손시켰다.
민주주의는 3권이 분립되고, 공공부문의 모든 종사자가 자기 직분과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결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소지가 전혀 없는 그런 사회다. 지금 현실은 어떤가.
87년 민주화 이후 하나하나 쌓아온 민주주의 시스템이 패거리즘으로 뭉친 소수 집권세력에 의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를 먹칠한 저들이야말로 진보의 적(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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