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보위원이 옷을 다 벗긴 뒤 돌아서라 앉으라 하고 자궁에 돈을 훔쳐오지 않았나 조사했습니다….”(탈북 여성 이모 씨)
비영리 민간단체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16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2020 북한인권백서’에 담긴 탈북민의 인권 침해 피해 증언 가운데 일부다. 백서는 북한 주민을 상대로 자행된 고문과 알몸조사뿐 아니라 눈앞에서 공개처형을 본 뒤 소감문을 작성하게 했다는 증언 등등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NKDB는 1999년부터 21년간 탈북민 정착 기관인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민들에 대한 심층 조사를 통해 북한 인권 침해 사건과 인물을 조사해 왔다. 이 단체가 축적한 인권 침해 사건이 7만8798건, 관련 인물은 4만8822명에 달한다. NKDB가 20년 넘는 경험을 바탕으로 인권 침해 사건을 16개 유형으로 나눠 분석한 백서는 북한 인권 실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NKDB에는 북한 인권 실태를 연구하는 석·박사급 연구원만 20명이 넘는다. 이들이 통일부와 계약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하나원 입소 탈북민들을 직접 조사하며 조사 역량을 강화해왔다.
하지만 통일부는 올해 3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NKDB의 하나원 입소 탈북민 조사를 중단시켰다. 북한 인권 실태 조사에만 전념해온 NKDB 연구원들은 내년 백서 발행이 불투명해졌다고 걱정하고 있다. 2013년부터 NKDB에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북한 인권 조사를 해온 연구원 A 씨는 “같은 탈북민이라 해도 하나원에서 접촉할 때와 퇴소한 뒤에 만났을 때 증언에 차이가 크다”며 “기억이 생생한 하나원에서 조사하는 것이 기록의 객관성이나 신뢰도 강화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자 NKDB 측은 정부와 협업을 통해 인권 연구가 더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정부는 북한인권법을 근거로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치한 뒤 매년 NKDB 측에 조사 축소를 요구해왔다. NKDB 연구원 B 씨는 “재정이 어려운 비영리단체에서 연구원들이 박봉에 야근까지 하면서도 통일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으로 버텨 왔다”며 “정치 상황 때문에 이념과 관계없는 연구 활동까지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북한 인권 정보를 정부가 독점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우려된다. 북한이 민감해하거나 비난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실태 조사를 축소하거나 숨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개선은 문재인 정부의 92번째 국정과제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인권에 침묵한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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