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라’ 내세운 아베
과거사 부정-부패스캔들 오명
한국 극단주의도 다르지 않아
의견 다르면 사회적 테러
자기확신 찬 독선은 공동체에 毒
석 달 전에 일본인 동료 교수 두 명에게서 저녁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다. 당시 한창 유행이던 줌 회식을 제안한 것이다. 그들은 한류 드라마 팬이어서 대화의 주제가 어느새 한국 드라마 ‘스카이캐슬’로 가 있었다. 우습게도 한국인인 나만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었지만 워낙 화제가 됐던 드라마라 대화를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한 동료가 최근 자녀들에게 스카이캐슬의 등장인물 중 하나로 불린다며 허탈해했다. 극중에 자녀의 명문대 입시에만 관심이 있는 교수가 있는데 그 교수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자녀들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아빠를 드라마 악역의 이름으로 부르는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아빠의 공부 잔소리에 대한 창의적이고 귀여운 반항에 감탄했지만, 동료는 자기가 아이들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해했다. 괜히 내 가슴이 뜨끔했다.
자녀를 사랑하는 모든 부모가 좋은 부모는 아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훈육하면서도 자녀의 말을 경청하고 자녀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는지 조심한다. 자녀를 사랑한다면서 자기 욕심대로 자녀를 조종하려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다. 자녀를 위한다면서 자녀를 망치는 부모가 있고, 학생을 위한다면서 학생을 망치는 선생이 있다. 공동체를 위한다면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이들이 있고, 나라를 위한다면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들도 있다.
2006년 전후세대 최초의 일본 총리가 된 아베 신조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나는 그 슬로건이 참신해서 좋았다. 세미나 수업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아름다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 토의한 적이 있다. 인권을 존중받는 나라, 공정한 나라, 부패와 차별이 없는 나라, 빈부격차가 적은 나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나라, 외국의 존경을 받는 나라 등등, 스무 살 청년들이 꿈꾸는 나라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베의 1차 내각은 위안부의 강제성과 국가 책임을 부인하는 발언으로 국제적 공분을 샀고, 2차 내각은 각종 부패 스캔들로 얼룩졌다. 그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아름다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국민에게 묻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가 상상하는 아름다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지 못한다. 그는 일본을 자랑스러운 나라로 만들지 못했고, 오히려 일본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대단한 애국자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했지만, 나는 그가 과연 애국자인지 지금도 의심스럽다.
혐한 시위를 하고 혐한 구호를 내뱉는 일본 극우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한다. 그들은 일본을 사랑한다면서 일본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고 외부의 시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본을 위한다면서 일본을 망치려 든다. 혐한 시위대에 대항하는 시민운동이 일어난 것이 그래서 일본을 위해 다행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친박 의원들은 ‘진박’ 감별사를 자처했다. 누가 진정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는 사람인지 감별해서 공천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이나 문고리 삼인방의 전횡, 소통의 부재에 대한 비판은 그 어느 것 하나 용납되지 않았다. 그 결과 정권이 몰락했고, 그들이 그렇게 사랑한다던 박 대통령은 영어의 몸이 되었다.
광복절 집회를 열고,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개천절에도 집회를 감행하겠다는 보수단체를 보면서도 그들이 말하는 애국이 과연 무엇인지 개탄스럽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을 타도하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떨쳐내지 못했던 이들을 무너뜨렸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의원실에 욕설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당론과 다른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친박 그리고 광화문 집회의 얼굴을 다시 본다.
내가 정말 좋은 부모인지 아이에게 잘못하는 것은 없는지 늘 묻고 늘 조심하지 않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다. 자기 확신에 차서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을 살피지 않는 애국은 매국이 될 수 있다. 매국은 자주 애국을 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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