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불안은 우리들의 주식이다 / 눈치껏 숨기고 편안한 척 앉아보지만 / 잘 차린 식탁 앞에서 식구들은 말이 없다 싱긋 웃으며 아내가 농을 걸어도 / 때 놓친 유머란 식상한 조미료일 뿐 / 바빠요 눈으로 외치며 식구들은 종종거린다
다 가고 남은 식탁이 섬처럼 외롭다 / 냉장고에 밀어 넣은 먹다 남은 반찬들마저 / 후일담 한마디 못한 채 따로 따로 갇혀 있다
현대시조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무심코 읽어보면 자유롭게 써 내려간 작품 같지만, 유심히 읽다 보면 뭔가 느낌이 온다. 본래 느낌이란 바람 사이로 스미는 향기와 같은 것. 우리는 자유로운 글자들의 유영 가운데서 형식의 절제가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각 연이 3행을 반복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중얼중얼 읽다 보면 운율도 느껴진다. 다시 말해, 천년의 형식과 현대의 서정이 결합한 장르가 바로 현대시조라는 말이 되겠다.
흔히 시조는 어르신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시조라고 해도 시상과 소재가 구애받는 일은 없다. 오히려 어떤 규칙 안에서 서정을 풀어내는 일이 읽는 재미를 찾아준다. 이 작품은 너무나 익숙한 우리의 풍경을 담고 있다. 한 식탁에 모여서 밥을 먹지만 각자 외롭고 각자 불안한 모습은 어제의 우리 집, 내일의 옆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말은 있지만 의미가 없는, 같이 있지만 진정이 통하지 않는 상황은 비단 한 가정만의 것은 아니다. 현대의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하고 외롭다. 사람과 세상이 원래 그 모양인 탓이라고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이 말해 왔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 당연한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로운데 외롭고 싶지 않다. 불안한데 불안하지 않고 싶다. 말을 해도 불통한데, 여전히 소통하고 싶다. 이 모순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다 가고 남은 식탁이 섬처럼 외롭다”는 말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저 식탁을 우리 모두는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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