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민주당의 부실 비례대표들[여의도 25시/한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2일 03시 00분


4월 9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에서 열린 제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2차 후보자 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시민당(현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홍걸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민주당의 대표로 참석했다. 동아일보DB
4월 9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에서 열린 제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2차 후보자 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시민당(현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홍걸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민주당의 대표로 참석했다. 동아일보DB
한상준 정치부 기자
한상준 정치부 기자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참….”

정의당이 11일 발표한 논평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틀린 말도 아니라서 딱히 반박도 못 하겠더라”고 했다. 논평의 핵심은 이렇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이 고작 부동산 투기에나 매진하고 있다니 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호부견자(虎父犬子·아버지는 호랑이, 아들은 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김홍걸 의원이 배지를 달게 된 것은 순전히 부친의 후광 덕분 아닙니까.”

정당 논평에서 동물이 등장한 건 극히 이례적이다. 이 논평에 민주당은 아무런 대꾸를 못 했고, 당사자인 김 의원도 침묵했다. 그리고 18일, 아버지가 만든 당에서 출당 조치를 당했다.

21대 국회가 출범한 지 석 달여가 지난 지금, 민주당 내에서는 “이번 비례대표가 왜 이 모양이냐”는 탄식이 떠돈다. 4·15총선 압승에 가려 있던 부실한 비례대표 공천 시스템의 문제가 연이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 소속 의원 수는 계속 줄고 있다. 총선에서 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포함해 180석을 얻었다. 그런데 총선 보름여 만에 179석이 됐다. 부동산 문제로 양정숙 의원을 제명했기 때문이다.

이후 국회의장이 당적 보유 금지 규정에 따라 탈당하고 위성정당 합당 과정에서 용혜인 의원이 기본소득당으로, 조정훈 의원이 시대정신으로 돌아가면서 176석이 됐다. 이어 김 의원까지 제명당해 175석이 됐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러다 174석도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윤미향 의원이 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된 탓에 또 제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 의원도, 김 의원도, 윤 의원도 모두 비례대표다. 21대 국회 제명 1호도, 기소 1호도 다 민주당 비례대표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이 총선 전에는 검증된 인재라고 자부했다는 점이다.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들은 3월 22일 의견서를 내고 “검증된 민주당 후보들이 (비례대표 순번에) 전면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양 의원은 5채, 김 의원은 4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총선 전 민주당은 도대체 검증을 어떻게 진행했다는 것일까. 민주당의 한 고참 당직자는 “의원들의 발의 건수를 살펴보면 문제를 또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법안 대표 발의 건수는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일까지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건수는 총 4117건. 평균을 내면 의원 1인당 약 13.7건이다. 13명의 민주당 비례대표 중 6명은 이 평균에도 못 미쳤다. 비례대표는 지역구 신경 쓰지 말고 직능 대표성과 전문성을 살리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는데, 밤낮으로 안방을 관리해야 하는 대다수의 지역구 의원만도 못하다. 비례대표들의 과거도, 현재도 문제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민주당은 별다른 말이 없다. 이낙연 대표 측은 “우리가 공천한 건 아니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비례대표 문제의 근본 원인인 선거법 개정을 이끈 주역들도 일제히 입을 닫고 있다. 이해찬 전 대표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통일부에 있다. 위성정당을 막후에서 조율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야인이 됐다.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졸속 비례대표의 피해는 또 국민의 몫이다. 제명 조치를 거듭해도, 부실한 의정활동으로 지탄을 받아도 비례대표들은 의원회관을 계속 지키며 9명의 보좌진을 거느릴 것이다. 당연히 세금에서 나온 1063만 원(6월 기준)의 월급도 매달 받는다.

21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고작 석 달 여밖에 지나지 않았다. ‘20년 집권’을 말하는 민주당이 빚어낸 이 광경을 국민은 앞으로 3년 8개월이나 더 지켜봐야 하는 셈이다.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


#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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