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의 힘[2030 세상/정성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2일 03시 00분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요즘 매일 감사일기를 쓴다. 평범한 하루에도 감사한 일이 정말 많다. 며칠 전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그 무엇도 기대되지 않는 공허가 찾아왔다. 하지만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기에 슬픈 순간에도 ‘죽고 싶어’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울면서 “지금 너무 슬프지만 곧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라고 쓰고 잠들었다.

우리는 아홉 가지 좋은 일을 겪어도 한 가지 안 좋은 일에 마음을 다 빼앗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감사일기를 쓴다. 감사일기는 남의 불행과 나의 행복을 비교하는 게 아니다. 이미 내가 가진 것을 음미하는 일이다. 혹여 감사일기를 써 보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지난 한 달간 쓴 감사일기를 옮겨본다.

하루 종일 잔잔하게 슬펐는데 그로 인해 안 슬플 때가 얼마나 행운의 날들인지 알게 되었어요. 내일 수업이 취소됐어요. 내심 바라던 일이 일어났음에 감사해요. 막상 가서 하면 좋은데, 가기 전엔 귀찮은 일들이 많아요. 운동도, 약속도, 배움도. 한편으론 아쉽지만, 한편으론 어쩜 내가 원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일기를 쓰다 보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8월 18일

친구가 필름카메라 사진을 인화해줬어요. 우리가 이렇게 못생겼었나? 헛웃음이 났어요. 못생겨도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동생이 기숙학원에서 나오고 싶다고 전화로 울먹였는데, 코로나19로 강제해산조치 당해서 감사해요.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어요. 할머니 전화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해요. 할머니를 보러 부산에 내려가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코로나19가 무서우니 고향에 오지 말래요. 얼떨결에 효도했어요. 며칠 집에만 있는 것도 힘든데 몇십 년을 집에만 있는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어 감사해요. ―8월 20일

영화 ‘남매의 여름밤’이 참 좋았습니다. 손님이 없어 운영도 힘들 텐데 소독 개찰구까지 설치해 준 대한극장에 고마워요.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았어요. 극장엔 5명밖에 없어 안타까웠어요. 이 좋은 영화를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할 텐데 아쉬울 뿐이에요. ―8월 28일

친구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곳에선 안 아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천사 같은 아이를 잠깐이나마 이곳에 보내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친구의 명복을 빕니다. 귀 안에서 맥박 뛰는 소리가 들려요.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9월 7일

아침에 눈떴을 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일어날 수 있어 자연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할 일 있음에 감사합니다. ―9월 19일

감사하면 사회적 지원을 받는다는 느낌이 커진다고 한다. 온 세상이 나를 적대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살 수 있다. 망각 속에서 그 감사함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감사일기#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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