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 하면서 병원 신세를 두 번 졌다. 한 번은 소위 ‘디스크’로 알려진 추간판탈출증으로, 또 한 번은 말라리아 감염증으로. 디스크에 이상이 생겨 그대로 주저앉은 건, 하필 신병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됐을 무렵이었다. 당시 군 병원에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같은 정밀검사 기기가 없었다. 민간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려면 휴가를 당겨쓸 수밖에 없었고 그 탓에 선임병의 따가운 눈총을 한 몸에 받았다.
내 척추 단면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의사는 마치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군대를 조금만 더 일찍 갔으면 이대로 의병제대까지 가능했을 텐데, 그동안 규정이 바뀌어서 수술을 받더라도 디스크로는 의병제대가 어렵다고 했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 디스크를 병역 면제 수단으로 삼은 꾀병 환자가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의병제대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졸지에 꾀병 환자가 된 것 같아 괜히 억울했다.
생명만큼 소중한 휴가를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검사만 받고 이튿날 곧바로 복귀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고가의 MRI 촬영 비용은 자비로 해결했다. 나의 복귀만 손꼽아 기다렸던 선임병은 속칭 ‘원산폭격’으로 내 디스크를 수시로 단련시켜 줬다. 선임병의 배려로 허리보다 목과 머리가 더 아파서 허리 통증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는 그나마 원산폭격을 받는 일은 없었다. 병장으로 진급하자마자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병장 진급을 기다려준 말라리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주변 눈치 살피지 않고 마음껏 몸져누울 수 있었다는 얘기고, 다만 자대가 산속에 있던 터라 제대로 된 진료나 치료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병명도 모른 채 열흘 남짓 진통제와 해열제를 달고 살다 결국 40도가 넘는 고열로 쓰러지면서 군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런데 이건 사실 무용담 축에도 못 낀다. 아마도 군필자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군 생활을 했을 테니까.
디스크에 이상이 생겼을 때나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나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먹고사느라 바빴던 나의 부모는 군대를 그저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런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보좌관이 추 장관 아들이 복무하던 부대로 전화까지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나는 그게 부적절한 청탁인지, 아니면 대충 눈감아 줄 수 있는 자식 사랑인지 판단할 생각이 없다. 지금은 군대가 달라졌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든지 디스크를 원산폭격으로 단련하지 않기를, 누구든지 아프면 충분히 쉴 수 있기를, 누구든지 마침내 몸성히 무사히 병역의 의무를 마치기를 바란다. 자기 자식이 말라리아 감염증으로 입원한 줄도 몰랐던 나의 부모처럼, 엘리트가 아닌 이들이 대한민국 군대에 바라는 최소한의 배려는 그 정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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