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새벽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며 종전(終戰)선언에 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당부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남북한과 중국, 일본, 몽골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성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이 북-미 협상 결렬과 함께 한동안 잊혀졌던 종전선언을 꺼내 든 것은 어떻게든 대화 국면을 복원시켜 보겠다는 기대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의 북-미 협상 과정을 돌아보면 종전선언은 사실상 버려진 카드나 다름없다. 정부는 종전선언을 한반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의 출발점이자 입구가 될 수 있는 정치적 선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종전선언을 ‘한국의 어젠다일 뿐’이라며 자칫 실질적인 비핵화는 없이 김정은 체제의 안전만 보장해줄 수 있는 종전선언의 역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북한도 한때 체제안전 보장과 대북제재 완화를 얻어낼 수단으로 종전선언을 활용했으나 미국의 선(先)비핵화 요구에 기대를 접은 분위기다. 그러니 종전선언은 이제 북-미 대화를 되살리는 카드가 되기보다는 한국만의 집착으로 비치기 십상인 형국인 셈이다.
북-미 싱가포르 공동선언도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거창한 합의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지키지 못할 정치적 선언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런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완결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로드맵이다. 한반도 종전선언에 아무리 훌륭한 문구를 담는다 할지라도 정작 비핵화 실행 없이는 외교 쇼만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을 40일 남겨둔 상황에서 북한의 모험주의 본능에 대한 엄중한 경고 없이 또 하나의 정치적 카드만 띄워선 누구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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