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이 시작 하루 전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질병관리청이 그제 밤 백신 접종 중단을 전격 발표한 데 대해 정은경 청장은 어제 브리핑에서 “백신 조달 계약업체의 유통 과정에서 냉장온도 유지 등의 부적절 사례가 신고됐다”며 전체 접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무료 접종을 위해 확보한 백신은 1259만 명분으로 모두 한 업체가 유통을 맡았으며 이 중 신고가 들어와 검사 대상이 된 백신은 500만 명 분량이다. 백신은 생물학적 제제(製劑)여서 저온 유통체계인 콜드체인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후진국에서나 발생하는 사고가, 그것도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이 예고된 가운데 일어나 국가 백신 접종 사업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유통 사고를 낸 업체는 독감 백신 배달 경험이 없는 회사라고 한다. 더구나 냉장온도 부실관리 문제는 유통업체가 직접 보고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경로로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 정 청장의 설명이다. 신고가 없었다면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줄도 모르고 맞을 뻔하지 않았나. 정부가 관리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업체를 선정해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사업 추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민간 의료기관이 올해 확보한 독감 백신은 2964만 명분으로 전체 국민의 57%가 맞을 수 있는 분량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500만 명분 가운데 품질 검사 결과에 따라 상당량이 폐기될 경우 독감 집단면역을 기대할 수 없어 트윈데믹을 막겠다는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독감 백신 접종 마지노선인 11월 초순까지 최대한 추가 물량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백신이 부족할 경우에 대비한 접종 대상자 선별 기준도 준비해둬야 한다.
코로나 사태를 끝낼 수단은 백신밖에 없는 상황이라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나머지 정부 조달 백신 물량은 물론이고 민간 병원에서 직접 확보한 백신의 유통 및 보관 실태를 집중 점검해야 한다. 백신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예방 접종을 기피할 경우 재앙적인 감염병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백신 제조와 생산 및 유통 과정에 빈틈이 없도록 관리체계를 강화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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