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갈등 일촉즉발 증오 양상
피해자 비난하고 희생양 만들 우려
갈등 덮기보다 효율적 조정이 중요
성숙한 사회 기본은 공정과 존중
‘사회통합’은 이해조정 그 자체다
사회갈등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현상이 되었다. 2015년 당시 대통령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조사 결과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의 진원지는 바로 ‘빈부격차’로 인한 계층 간 갈등임이 입증됐고 2017년 한국행정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한 세대간극 및 세대갈등이 해를 거듭하며 심화되고 있음이 구체적 수치로 확인됐다.
다만 최근의 한국 사회 갈등 양상 속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축이 정규직 대 비정규직, 청년 대 중장년, 수도권대학 출신 대 지방대 출신, ‘친조국(親曺國)’ 대 ‘반조국(反曺國)’ 등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갈등 상대가 손에 잡힐 듯 구체화되고 있다. 아울러 상대 집단을 향한 갈등이 분기탱천하는 분노 수준을 넘어 일촉즉발의 증오 수준으로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토록 위태로운 사회갈등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아래 양극단에 서 있는 이들의 ‘만남’을 시도해 본 동아일보의 기획 ‘극과 극이 만나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서구에서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지던 때 이주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부정적 고정관념 및 차별과 배제 등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갈등이 촉발된 적이 있다. 당시 이주민들의 삶에 담긴 신산(辛酸)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입장을 들려주는 ‘경청’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서로 간 갈등이 서서히 해소되고 때로는 이주민과 공고한 유대가 만들어지던 선례를 떠올리게 한다.
갈등이 없는 관계나 갈등이 사라진 사회를 상정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갈등을 둘러싼 인식 전환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관계에서는 갈등이 생겨날 리 없고, 무소불위의 파워를 행사하는 독재 체제에서는 갈등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갈등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갈등은 물론 절대 사절이지만,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갈등까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는 않아도 좋으리라.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가족이 건강한 가족이듯, 갈등을 외면하거나 덮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윈윈’의 지혜를 모색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 분명하다.
갈등이 양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정작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손잡고 협력해야 할 동료들끼리 편 가르며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엉뚱한 희생양을 만든 채 갈등을 덮어버리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극과 극이 만나다’ 기획 기사에는 갈등 촉발 요인으로 지방인재 등용 정책과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이 등장한다. 두 정책 모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역차별 및 특혜로 인식되면서 예기치 않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특정 사회집단을 대상으로 혜택이 부여됨은 그 이면에 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숙지한다면 불필요한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철저한 노인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는 스위스에서는 노인을 위한 별도의 대중교통 혜택이 없다지 않는가.
나아가 공정한 시스템을 갖추는 일 못지않게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는 극과 극에 서 있는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일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능력은 성숙한 시민의 기본 자질이다. 요즘 회자되는 ‘내로남불’은 비합리적인 자기정당화와 다름없으며, 옳고 그름의 기준이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머물러 있는 미성숙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협상 및 조정의 가능성을 차단한 채 갈등을 위한 갈등 내지 갈등의 극단화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통합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integration’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구성원의 이질성 및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통합이란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하나가 되자’는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상충하는 집단 간 이해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함으로써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소해가는 과정에 더욱 가깝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는 진정성을 갖춘 공정한 시스템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반으로, 인정과 존중의 문화를 실행해간다면 양극단으로 치닫는 갈등 또한 서서히 해소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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