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설치-국정원 개편 등 막바지
野 배제하는 與, ‘다수의 독재’ 우려
민주주의 전제는 다원주의와 관용
여야 합의로 만든 제도라야 오래갈 것
문재인 정부에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권력기관 개편이다. 검찰개혁을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국정원의 국내 정보활동을 금지하는 조직 개편, 자치경찰제 도입 등이 계속 추진되었다. 이제 자치경찰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권력기관 개편이 종결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열의를 비롯한 권력기관 개편에 대한 적극성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개혁에 걸림돌이 되었고, 퇴임 후에는 검찰권의 오남용으로 인해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끔 만들었다는 인식이 검찰에 대한 적대적 태도, 나아가 권력기관 개편에 대한 집요함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 후 만 3년을 넘긴 시점에 그런 단순한 논리로 현 정부의 권력기관 개편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미 검찰을 분열시키고 상당 부분 장악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수사에서 검찰의 늑장 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적대감을 근거로 검찰개혁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거대 여당의 독주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올 1월 14일 제정돼 7월 15일부터 시행된 공수처법은 현재 야당의 불참으로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여당 의원들에 의해 3건의 공수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김용민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공수처의 직무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고, 박범계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과 백혜련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의 구성을 변경하는 내용이다.
과거 공수처법 통과 당시에 공수처장 임명에 대해 야당의 거부권을 인정하겠다고 말하던 여당이, 이제는 야당을 공수처장 추천위원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제출한 것은 거대 여당의 횡포라는 비난을 받기에 족하다. 설령 실제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개정안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이유로 야당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야당 배제를 납득하기는 어렵다. 과연 174석 거대 여당이 아니었다면 이런 개정안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헌법재판소에 공수처법의 합헌 여부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제청한 상태이므로 그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협조하지 않는 야당은 배제하면 된다’는 여당의 태도이다. 이는 대법원도 공식적인 반대 의견을 낼 정도로 전형적인 힘의 논리이며 여당이 ‘다수의 독재’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표다.
민주주의의 이념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전제가 바로 다원주의이며 관용의 정신이라는 점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민주적 다수결이라 해도 절대적 진리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자유와 평등이 인정되는 것은 곧 절대적 진리의 문제가 아닌 주관적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이 서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거대 여당만이 옳다고 믿으며 소수 야당의 가치판단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이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이 민주주의의 중요 요소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원칙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절대적인 기준도, 유일한 원칙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 주권을 올바르게 실현하기 위해 ‘현재적 다수’의 판단에 우선하는 ‘역사적 다수’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다수결의 한계를 인정하거나 갈등과 대립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합의 도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조국 전 장관에 이르기까지 돌이킬 수 없는 개혁, 대못을 박는 개혁을 강조한 경우가 참 많았다. 하지만 그런 대못이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현재의 다수가 힘으로 박은 대못은 다수관계가 변경될 때 얼마든지 뺄 수 있다. 현 정부가 공들여 추진한 공수처 설치를 비롯한 권력기관 개편 또한 마찬가지다. 다수의 힘을 앞세워 대못을 박은 제도가 아니라, 국민적 공감과 여야의 합의 속에 뿌리내린 제도만이 진정으로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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