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주류는 다수의견, 보수 소수는 정반대편에
역대 최저 전원일치에 ‘모두를 위한 판결’ 실종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몰려다니는 줄은 몰랐다.”
최근 동아일보 법조팀이 서울대 한규섭 교수 연구팀과 함께 2005년 9월부터 올 9월까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274건을 미국 연방대법관 분석 기법으로 조사한 판결 성향을 본 현직 판사들이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이다. 김선수 박정화 김상환 민유숙 노정희 등 현직 대법관 5명이 전합 판결 38건 중 71.1%인 27건에서 같은 의견을 냈다는 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진보나 보수 성향 판사들에게 각각 물었는데, 가장 흥미로워하는 지점이 비슷해서 엑셀 파일로 정리한 분석 전(前) 데이터를 다시 한 번 열어봤다. 분석 결과 현직 중 진보 성향 톱3인 김선수 박정화 김상환 대법관의 동조 현상은 압도적이었다. 세 대법관은 전합 판결의 80%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이를 두 명씩 나눠봤더니 판결 일치 비율이 각각 김선수-박정화는 90.0%, 박정화-김상환은 87.5%, 김선수-김상환은 87.2%였다. 평균적으로 10번 중 9번을 같은 의견을 낸 것이다. 반면 보수 성향 이동원 안철상 이기택 노태악 등 대법관 4명은 진보 성향 대법관의 절반 정도인 약 40%의 판결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사회 변화와 국민의 뜻이 사법부 구성에 반영되는 거의 유일한 지점이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과 국회의 인준, 대통령의 임명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집권당과 국회 의석 분포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는 구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젠더법연구회 출신인 진보 성향 5명의 대법관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박정화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청했지만 나머지 4명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다양화를 위해 제청권을 행사했다.
5명의 대법관 모두 법원 안팎의 후보 추천 절차를 거쳤고, 현 여당이 절반 미만이었던 국회 본회의에서도 최소 64%, 최대 84%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15년이라는 긴 안목을 갖고 ‘김명수 코트’ 전반기 3년을 분석하면 부족한 점이 보인다.
무엇보다 지금의 대법원은 양분되어 있다. 현역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분석 대상인 전체 46명의 전합 구성원 중 진보 1∼3위 김영란 전수안 박시환 전 대법관보다 진보 성향이 약하다. 전체 보수 1∼3위인 안대희 김황식 민일영 등 자신만의 법 논리로 중무장한 보수 성향 전 대법관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현직 보수 성향 대법관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과거 대법원들과 비교하면 대법관들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인데도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다수의견을,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반대의견이라는 예측 가능한 판결을 하고 있다.
대법원의 양극화는 사회적 울림이 큰 전원일치 전합 판결의 실종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적으로 ‘김명수 코트’의 전원일치 전합 판결 비율은 11.1%로 ‘양승태 코트’(33.6%), ‘이용훈 코트’(36.8%)의 3분의 1 이하인 역대 최저 수준이다. 비슷한 성향의 대법관들이 모여 전원일치 전합 판결을 양산한다면 소수의견이 등한시되는 획일적인 사법부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양극단의 대법관들이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고 난상 토론을 한 뒤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만장일치로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판결 불복을 줄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번 분석으로만 본다면 김 대법원장은 임기 후반기에 5명의 대법관 후보를 더 제청할 때 김선수보다 더 진보적이고, 노태악보다 더 보수적인 대법관을 뽑아도 된다. 지금 절실한 건 양 진영의 논리를 조정해 ‘국민 모두를 위한 하나의 판결’을 이끌어 내는 리더십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