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추석을 홀로 보내긴 처음이네요.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집 안이 썰렁하니 쓸쓸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추석 당일인 1일, 경기 안성에 사는 이모 씨(82·여)의 목소리는 애잔함이 묻어났다. 아들 셋에 딸 둘이나 뒀지만 올해 추석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 씨가 심혈관 질환을 앓다 보니 더욱 조심스러웠다. 지척에 사는 큰아들 내외도 전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머리와 가슴은 따로따로였다. 막상 연휴가 시작되자 크나큰 허전함이 밀려왔다. 이 씨는 “괜히 ‘그렇다고 한 명도 안 오나’ 섭섭함이 스쳐가더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내년 설이라고 사정이 나아질까 싶어 더 우울하다”고 말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이 끝났지만 후유증이 심상찮다. 평소라면 며느리 등 자식 쪽에서 나오던 ‘명절 증후군’ 하소연이 올해는 어르신에게서 쏟아진다. 고대하던 가족 모임이 사라지며 우울함을 토로하는 노년층이 적지 않다. ‘코로나 블루’에 빗대 ‘코로나 실버’란 말까지 나온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차모 씨(79)도 평생 처음 홀로 추석을 맞았다. 지난해 부인과 사별한 뒤 그의 곁을 지켜준 건 TV 리모컨뿐이었다. 차 씨는 “자식들이 오겠다는 걸 나서서 말렸지만, 외로움에 속이 쓰린 건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소외계층 어르신들의 추석은 더욱 아렸다. 2일 서울 종로구의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엔 오전 10시 반경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배식 시작을 1시간이나 앞뒀지만 멀리서부터 한 끼를 해결하러 사람들이 몰렸다. 준비된 식량이 떨어져 그냥 발길을 돌린 이들도 있었다.
양모 씨(75)는 “코로나19 전엔 막일이라도 다녔는데 요즘은 그마저 수월치 않다”며 “몸도 맘도 배고픈 명절인데 배식까지 놓쳤다”며 속상해했다. 인근 돈암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A 씨(70)는 “매년 명절에 쏟아지던 생필품 후원도 자원봉사도 코로나19 탓에 확 줄었다”며 “상황이 이러니 심리적 압박은 더욱 커졌다”고 한숨지었다.
노인들이 정신질환에 고통받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노인 정신질환 진료 현황’에 따르면 공황장애를 앓는 어르신은 2010년 7495명에서 지난해 약 5.2배인 3만9284명으로 늘어났다. 우울질환 환자도 1.6배 늘었다. 이런 노인들에게 추석 같은 명절은 넘기 버거운 고비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되는 명절엔 절망감과 박탈감 등에 내몰릴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경고했다.
“모두가 힘든 명절이라 그런지, 전화 한 통이 안 걸려 오네요.” 탑골공원에서 만난 양 씨는 액정이 깨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지나가버린 추석 다음 날인 2일은 1997년 보건복지부가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노인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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